“저는 봉사단체 회원이에요. 그리고 회원들을 대표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런 이유로 각 단체장들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농사일을 하다보니까 때론 화장도 못하고 갈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애써 폼 잡을 이유도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악수할 때 손에 묻은 흙을 털고 이렇게 말하곤 했죠. ‘저는 시골아줌마여서 일하다가 왔어요’라고 말이에요.”
풍세면, 가지런히 심어진 배추밭을 지나 엽채류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천안시 여성단체협의회 가재은 회장의 말이다.
그녀는 농민의 아내로서 농사만 짓고 살았다고 한다. 또한 봉사활동을 한 적도, 받은 적도 없던 그녀이기에 지금처럼 봉사단체에서 활동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40대 초반쯤이에요. 상가집을 갔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봉사를 하고 있더군요. 의용소방대원들이었어요. 합동해서 봉사하는 그들의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했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봉사를 하고 싶다’라는 마음까지 들게 했었죠.”
그렇게 시작된 봉사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거노인에 관한 일이었다고 한다. 혼자 살고 있는 어느 할머니였는데 돌아서는 자신을 향해 툇마루에 걸터앉아 손을 흔들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손의 관절이 노화돼 손가락이 잘 펴지지도 않던 손을 흔들고 또 흔들던 할머니. 봉사란 내가 가진 아주 작은것을 베푸는 일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선물이 된다는 것을 그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저는 농민의 아내에요. 지금은 천안시 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지만, ‘봉사를 하고 싶다’라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농민의 아내임을 잊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꿈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무의식중에도 봉사를 했던 그 소박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지만 결국 본인의 마음에 안녕과 풍요를 찾는다는 가재은 회장은 ‘손에 흙이 묻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신의 겉치레와 외부적인 사치에만 신경 쓰는 것이 진정 부끄러운 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