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근섭(39 봉명동)씨.
“바로 그 전날밤 까지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아기들 먹을 것 사러 나간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야 집에 있던 돈과 물건들, 어린이집 지원금까지 다 챙겨나간 걸 알았어요. 이후 몰려드는 배신감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안씨가 1년여의 연애 끝에 아내와 결혼에 골인한 것은 지난 2005년 이다. 당시만 해도 안씨는 양식당 주방장으로 날렵한 칼솜씨와 팬요리로 인정을 받았던 시절이다.
나중에 생각하니 아내의 가출이 아주 조짐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에 한참 빠져있기도 했고 평소와는 달리 꽃단장하고 외출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6개월된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는 황당한 일을 벌이라고는 누구라도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출 첫날 아내의 실종신고를 낸 그는 종일 미친듯이 찾아다녔다. 급기야 소방서를 통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한 결과 아내가 있는 곳은 전혀 연고도 없는 경상도 대구로 밝혀졌다. 그동안의 모든 사소한 정황들이 아내의 바람으로 인한 가출로 귀결되자 그는 결국 아내찾기를 포기했다.
본인과 자식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연락조차 받지 않는 부인에게 화가 난 그는 5일동안 밥 한끼, 물 한모금조차 먹지 못했다. 이후 말조차 나오지 않아 병원을 찾아 CT촬영을 한 결과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 진단을 받고 두달여간 입원신세까지 지게 됐다.
이후 몸 왼쪽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아이들을 안기도 힘들 정도로 악화됐고 2개월여 전부터는 완전히 마비상태로 몸 왼쪽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는 현재 뇌병변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상태다.
이어지는 가출, 이제는 정리를 결심한 상태
“몸이 불편해지면서 일하던 곳에서 해고되고 어려웠을 때, 가출 6개월여 만에 아내가 돌아왔었습니다. 심적으로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겉으로는 진심으로 반성의 기미를 보였고 제가 몸이 불편해 근로능력이 없어지는 상태인데다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한번만 참아보자는 생각에 그렇게 작년 10월까지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가출은 이미 습관처럼 되어버리고 만 상태였습니다.”
가출후 돌아와 2년여를 더 사는 동안에도 그녀는 종종 집을 비우고 가출하곤 했다. 나갈 때마다 빚을 지고 들어오고, 어렵게 어렵게 빚을 갚아주면 다시 집안 살림을 다 털어가지고 나가기가 몇 번 이어졌다. 작년 11월에는 집에 남아있던 돈과 낡은 차까지 모두 가지고 나가버렸다.
안씨는 이제 어렵게 마음을 굳혔다. 현재는 아내의 주민등록을 말소시킨 상태고 조만간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를 정리할 예정이다.
아이들 새옷 한 벌씩만 입혀줬으면…
근로능력을 잃어버린 그에게 세 아이의 양육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가장 걱정은 올해 7살인 첫째 지민이다.
“지민이가 우울증이 있어 고민이에요. 며칠 전에도 애들 셋이 모두 없어져 한시간 이상 찾으러 다녔어요. 동네 어른 댁에 가 있었는데 왜 없어졌었느냐고 물으니 엄마를 찾으러 나갔다더라고요. 그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무너지듯 아픈 거에요.”
7살, 5살, 2살.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것저것 사달라, 먹고싶다, 데려가 달라는 말에 난감해 지곤 하는 근섭씨. 아이들에게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거짓말 하는 본인의 모습에 자괴감까지 느껴진다고.
현재 기초수급으로 110만원 가량이 지원되고는 있지만 월세30만원에 이미 지고 있는 부채 900만원을 분할 상환하느라 매월 40만~60만원이 들고 세아이의 보육비 본인부담금 16만원, 가사도우미 본인부담금 15만원 등을 내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저 새 옷 한 벌씩만 사서 입혀줘 봤으면 좋겠다며 긴 한숨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보이는 무력한 아버지에게 한가위 같은 큰 명절은 더 가혹하게 느껴져 안타까움을 더 했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