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가 두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자들의 출마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이번 선거를 정책선거로 유도하기 위해 ‘선거의제보도’를 기획했다.
3주에 걸쳐 2개의 주제씩 게재되는 ‘선거의제보도’에서는 특히 시장 출마 후보자들이 관심 쏟아야 될 지역 현안을 해결점 모색과 함께 싣는다.
‘선거의제보도’가 끝난 뒤에는 보도에서 도출된 의제를 중심으로 후보자에게 질의서를 발송한다. 후보자 답변서는 분석과 함께 5월중에 게재, 독자들의 후보자 선택 판단을 돕는다.
<편집자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지난해 가을. 추수를 앞둔 황금들녘에선 풍년가 대신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 논밭을 불사르고 추수파업을 선언한 농민들이 곡식을 갈아 엎었다.
그나마 추수한 볏가마는 시청 앞마당과 농협에 쌓으며 무기한 철야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때 수많은 도시민들이 ‘농촌문제 참으로 심각하다’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쌀팔아주기 운동을 비롯한 각종 이벤트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며 대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현실적인 명쾌한 해결책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안이 없다면 농업과 농촌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당시 천안시는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며, 다만 ‘다른 곳보다는 후하게’라는 절충안을 내놨다.
쌀값보장과 함께 농민의 권익을 주장하던 천안시농업경영인회(회장 김주열)와 천안농민회(회장 정진옥)를 비롯한 농성참여 농민들은 지난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긴 영농일지를 썼다.
물론 기초단체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고민하며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가능할 것이다.
농촌지역은 적은 인구지만 투표율은 가장 높다. 많은 도시민들이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안시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농촌문제에 대해 어떤 행정을 펼쳐야 할까.
떠나는 농민들
“더 이상 살기 힘들어 떠났을 거야. 농촌 살기 힘든 것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때는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 쌀 팔아 자식 학교 보내고, 남은 돈으로 근근이 생활이 가능했는데. 요즘 왜 이리 힘든지 몰라.”
본격적인 영농준비에 분주한 농촌지역은 요즘도 하나 둘 빈 집이 늘고 있다. 지난 겨울 인근 도시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로 취업했던 어느 농부가 급히 전답과 집을 처분하고 농촌을 떠나 버렸다.
몇 해 전부터 주말마다 식당주방일을 다니던 옆집 아주머니도 차라리 도시에서 허드렛일 하는 것이 농촌을 지키는 것보다는 낫겠다며 자식들을 데리고 이사해 버렸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고, 많지는 않지만 매달 생활비 조달이 가능한 도시로 간 것이다.
젊은 영농인들이 농촌을 떠나자 농촌엔 고령의 노인들만 남게 됐다.
부업농가도 늘고 있다. 남편은 농업을 아내는 직장생활이나 식당 등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자영업의 경우 그 성공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농현상은 도시에 새로운 계층형성과 함께 생존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이다.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는 대부분 도시 서민층을 형성하고, 기존 인력들과 공장의 생산라인이나 일용직, 소규모 자영업까지.
또한 도시의 주택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각종 사회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농촌을 떠난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천안아산출장소 통계자료에 따르면 95년 천안시 농가는 1만2천4백22가구에서 5년후인 2000년에는 1만1천7백5가구로 7백17가구(5.7%)가 줄었다.
95년 농가인구는 4만4천9백5명에서 2000년에는 3만8천9백54명으로 5년만에 5천9백51명(13.2%)이 줄었다.
같은 기간 천안시는 비대해지고 있다. 전체인구는 33만4천8백명에서 42만5천1백35명으로 9만3백35(26.9%)명의 증가를 보였고, 현재는 44만명에 이른다. 불과 7년만에 10만 이상의 인구가 증가했다.
방치된 농촌 아이들
한 농촌학교 교실에서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여러분 차도는 위험하니 반드시 인도로 다니세요. 길을 건널 때는 파란불이 켜졌을 때 손을 높이 쳐들고 횡단보도로 다녀야 안전하죠.”
“선생님 신호등은 뭐고 인도는 또 뭐예요?(아이들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상으로 그려본 농촌학교 종례시간 풍경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먼저 천안시 풍세면과 광덕면 사이에 있는 광풍중학교 입구와 연결된 도로를 살펴 보았다.
학교 정문에서 마을로 이어진 길은 그 어딜 찾아 보아도 차도와 인도가 구분돼 있지 않다. 도로 양 끝에는 흰 실선이 그려져 있고, 그 밖을 인도라고 하기엔 한줄로 걷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학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 위를 다닐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역시 중앙선조차 없어 비좁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차량들은 보통 시속 80㎞ 이상으로 달린다. 국가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어린 학생들이 마냥 교통사고의 위험에 방치돼 있는 것이다.
광풍중학교에 재학중인 학부모 몇 명에게 물었다. 천안시의 새로운 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이렇게 학교를 빠져나온 아이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학부모는 새벽부터 밥늦도록 생업에 종사하느라 아이들 돌볼 틈이 없다.
시내 사설학원을 보내려 해도 경제적인 부분부터 많은 문제가 있다. 차라리 시내권 학교로 전학시키는 방법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천안시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사람은 이 문제가 모든 농촌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아닌지 주지해야 할 것 같다.
농촌의 교육문제는 교육당국에 맡길 것이 아니라 지역의 농촌문제로 인식한 자치단체의 지원과 노력도 따라야 한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대평리 사람들은 며칠에 한 번씩 줄초상이 났대유”“그게 사실여?”“그려. 그동네 길가엔 귀신이 산다능겨. 아유 무서워라”
광덕면 대평리는 차령고개를 사이로 천안시와 공주시의 접경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
일년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각종 농기계가 도로위를 운행하고 있었다. 한눈에 위험이 감지됐다. 차도를 느리게 운행하는 농기계 옆으로 조금도 주저없이 추월해 나가는 자동차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주민인 양승화(광덕면 대평2리)씨를 마을에서 만났다.
“귀신은 무슨 놈의 귀신. 개떡같은 교통행정이 멀쩡한 사람잡는 귀신이지. 마을에서 몇번이나 대책을 요구했지만 천안시는 귀를 막고만 있다니까.”
양씨가 큰 소리로 내뱉자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거들기 시작했다.
“내 어떤 때는 한뼘밖에 안되는 길을 건널라구 몇 십분씩 기다린적도 있어. 웬놈의 차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는지. 염병할...”
사실이 그렇다. 대평리 앞길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차량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도를 다닐 수밖에 없는 농기계나 자전거, 오토바이 등은 차도를 질주하는 차량들에 있어선 매우 성가신 존재일 수밖에 없다. 주말이나 명절때는 더욱 심각하다.
차량 운전자는 상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충돌하거나, 추월하다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농촌지역 도로는 오직 자동차만을 위한 길이다. 농기계나 보행자를 위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평리와 비슷한 처지의 마을 주민들은 행정당국이 어떤 조처를 취해주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며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이 좋아 사고가 나지 않길 바라며.
천안시 곳곳에 각종 도로 확?포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단지 지역을 스쳐 지나는 차량을 위한 길인지, 토착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제대로 됐는지 다시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천안시의 새로운 지도자는 농촌지역에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실천해야 지지를 얻을까.
봇물이 터질까요?
지난 봄 한 세기만에 찾아왔다는 가뭄이 농촌 들녘을 까맣게 태웠고, 농민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대부분 농민들은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해 관정을 뚫고,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이용했다.
물에서 인심난다고 했던가. 순박한 농민들이 밤새 어렵게 확보한 물을 도둑 맞았다며 이웃과 다투기도 했다. 흉흉해진 시골 인심에 어느 지역에서는 삽부림, 낫부림, 칼부림까지 했다던가.
가뭄은 천재지변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작년의 경우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가뭄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농민의 목소리가 솔깃하게 한다.
천안농민회 김정수 총무부장은 “보가 제구실을 하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보는 일정량의 물을 가두는 것이 목적인데 작년에는 분명 보 안에 물을 가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뭄이 극심해지자 광덕과 풍세를 지나는 풍서천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그때 보는 물을 가둘 수 있는 보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하천바닥은 장마때 떠내려온 흙과 모래, 자갈 등으로 인해 이미 보와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사진 참조)
천안시 통계자료에 따르면 천안지역에 설치된 취업보는 총 1백48개에 이른다. 이 중 제 구실을 다하는 보는 얼마나 될까.
영농교육의 질을 높여라
지난 98년 도시의 한 중소기업체에서 중견간부사원으로 근무하던 이덕주(40)씨는 모든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결심했다.
당시 이씨의 총재산은 1천7백만원. 이씨는 두 자녀와 아내를 설득해 고향인 병천면 봉항리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이 처절하게 전개됐다.
이씨는 마을 회관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부지런히 땀흘리며 일했다. 밤잠 설쳐가며 영농기술을 연구하고 ‘남보다 더, 일찍, 부지런히’를 외쳤다.
당시 36세의 나이가 이제 불혹을 맞았다. 현재 그는 연간 총 7천만원 가까운 소득을 올리며 농가 정착에 성공했다.
자재비나 각종 영농비용을 제해도 4천5백만원 이상의 순수익이 발생된다는 것.
물론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농촌생활의 정착단계였던 지난해 폭설로 인해 그의 하우스 9동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도움과 강한 의지로 극복할 수 있었다.
다음달엔 새로 집을 지어 입주할 계획이다. 또한 가장 우려했던 자녀들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농촌적응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이씨는 자신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연고지였다는 점을 들었다. 반면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나 귀농인들에게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귀농인들에게 실질적인 양질의 영농교육기회를 꾸준히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영농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얼마나 될까 자치단체에서 냉정히 검증할 필요가 있으며, 유능한 강사진을 초청해 교육기회를 지속적으로 부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덕주씨에게 현재 생활에 만족하냐고 묻자 그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에게는 주변의 지속적인 관심이 의지못지 않게 컸다.
천안농민도 좀 먹고 삽시다-지자체 적극적인 세일즈행정 지원 펼쳐야
천안지역에는 중부농축산물류센터, 메가마켓, 까르푸, 마그넷, 이마트, 한화유통, LG 등 대형할인매장이 입점해 있다.
이들에게 같은 값이면 일정량의 지역농산물을 판매토록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천안시민을 상대로 영업을 하면서, 지역농민에 대한 그 정도 배려도 할 수 없을까.
물론 해당 업체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불가론을 제기한다. 본사 차원의 물류지원체계가 있고, 본사의 운영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점에서는 아무런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천안시도 그것을 의무화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말한다.
천안지역에 입점해 있는 대형할인매장들은 천안에서 천안시민들을 상대로 막대한 지역자본을 흡수해 외지로 유출하고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지역에 이바지한다고 말한다. 편리한 쇼핑공간을 제공해주고, 저렴하고 다양한 상품에 고용창출까지.
양측 모두 항상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이에 대해 천안농민회 박현희 사무국장은 “천안시가 적극적인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알래스카에서 선풍기를, 사막에서 모래를 파는 것이 세일즈외교 아닌가. 자치단체는 지역민을 위한 적극적인 세일즈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내에서 안정적인 농산물 거래가 성사된다면 물류비용도 줄이고, 더 우수한 농산물 생산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력하고 책임있는 농정집행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기획, 이양한 각종 사업을 실효성 있게 집행해야 하며, 원만한 처리를 위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와함께 지역실정에 맞지 않는 투자예산은 과감하게 전용해, 지역실정에 맞게 현장 농민 중심의 지원, 현장애로, 품목별 생산 및 유통지원사업, 농가소득안정화사업 등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박성규 천안농민회 교육부장은 강력하고 책임성 있는 농정집행을 강조했다. 특히 지역농업특성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고, 농정에 농민은 물론 각계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고 그 권한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정자들은 현재 지역내 농가의 부채실태는 파악하고 있는가. 농가부채의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채규모, 내역, 발생원인, 해결방안을 기초의회와 농민의 공동 참여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행할 수 있는 농지보전과 직접지불제도, 농산물유통지원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내 모든 농지를 대상으로 농지이용계획을 수립하고, 준농림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막연한 기대의 산업단지조성, 골프장 및 위락시설 등과 같이 무계획적인 난개발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지역내 품목별 생산자조직을 적극 육성하고, 전국적인 품목별 협의기구 구성을 위해 산지유통을 지원해야 한다. 투명성이 결여되고 베일에 가려 왜곡된 도매시장 기능을 정상화하고, 도매시장과 별도로 다양한 유통경로를 육성해야 한다.
도매시장내 불법행위가 있다면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기초의회, 생산자단체와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농산물 유통의 철저한 감시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
농촌교육문제를 교육당국에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국공립 탁아소와 보육시설확충으로 여성농민의 부담을 경감할 방안은 없는가. 농업재해보상에 대한 신속한 업무처리와 현실적인 보상이 이뤄지도록 농업재해보상처리위원회 구성과 지자체 자체 재원조달도 있어야 겠다.
농민들의 요구는 다양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농민들이 새로 출범될 민선 3기 천안시 농정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