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율이가 어느덧 10개월이 됐어요. 엄마 몸이 좋지 않을 때 임신해서였는지 기관지염, 천식, 철 부족으로 인한 빈혈 등 잔병치레가 좀 잦은 편이에요. 병원에 가서 종합적으로 정밀건강진단을 받게 하고 싶은 데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많이 미안하죠.”
엄마 김희경씨는 세상에서 말하는 ‘미혼모’다.
대부분의 미혼모들은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불필요하고 과도한 사람들의 관심과 편견을 이기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본보를 통해 소개되기까지 희경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어서, 사람들을 속여가며 살아갈 수는 없었다. 하율이를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이제는 떳떳한 엄마가 될래요’
희경씨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2008년, 작은 주점을 맡아 운영하게 됐다.
처녀가 선뜻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스스로 계기가 필요했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하율이 아빠를 만나게 됐다. 서로를 사랑하고 믿으며 그때부터 이어진 1년 반의 연애.
하율이 아빠는 당시만 해도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처음 임신소식을 알렸을 때도, 기뻐하며 아이를 낳자고 했다. 병원에도 같이 갔었고 임신 5개월이 되도록 함께 살았다.
하지만 빚과 개인적인 문제로 정상적으로 취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없었던 그는 서울로 가서 돈을 벌어 부쳐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바람과는 달리 그런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락의 빈도도 낮아지고 일주일에 한번씩 내려 온다던 다짐도, 송금의 빈도도 점점 줄어갔다. 결국 끊기고 만 연락.
원룸에 살던 그녀는 결국 월세부담에 구성동의 낡은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하지만 낡고 낡은 건물에 재래식 화장실, 해충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집에서 차마 출산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친정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이런 사연을 정확히 아시지는 못하지만 자식의 말을 일단은 들어주셨다. 하지만 내막을 아는 동생들과 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속에 언제까지나 감출수도 없는 노릇.
하율이는 어느덧 첫 돌을 맞고 있고, 그녀는 이제 새로운 결심을 하고 있다.
‘당당히 모든 사실을 알리고 세상에 나가, 새로운 출발을 통해 하율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겠다.’는
미혼모에 대한 지원·관심 ‘절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있는 그녀가 지원받는 돈은 월 60만원 정도.
하지만 이 돈의 대부분은 그동안 친정아버지에게 '하율아빠가 보내준 것'이라며 생활비에 보태기에 바빴다.
아버지 댁에 있는 동안 어떻게 직장을 구하려고 부단히 노력도 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취업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면접에서 아이의 존재와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구인업체 관계자들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격려해 준다. 하지만 정작 최종구인에서 그녀는 배제되기 일쑤다.
취업을 하게되면 소득이 잡히는 탓에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도 고민꺼리다. 최소한의 주거와 생활이 자리잡는 기간만이라도 기초수급기간을 연장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미혼모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관심은 진심어린 희망사항이다.
그녀와 같은 미혼모는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은 나아지는 게 없다. 그녀들 스스로도 적극적이기 힘든 탓에 이 부분은 지금껏 복지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현재 천안에 있는 미혼모 보호시설은 단 한 곳으로 7가정만을 수용할 수 있다. 입소를 원하는 대기자들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주거문제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길, 미혼모들과 그녀의 자녀들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커 갈 수 있게 되길 그녀는 바라고 있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