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가명·31·성정동)
“이제 8살인 큰 애가 가장 걱정이에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소아우울증 증세까지 있다고 하니까요. 학교생활에 적응도 못하고 하루에 한건씩은 사고를 칠 정도예요. 우리 준이(가명)에게 좋은 멘토가 있어줬으면, 남에게 예쁨받는 아이로 커 줬으면 더 바랄게 없겠어요.”
이제 31살인 이현정씨는 벌써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들과 젖먹이인 남매의 엄마다.
여린 목소리, 눈에 띄게 하얀 얼굴의 그녀에게 무슨 힘든 일이 있었을까 싶었지만 이씨가 최근 10년간 겪어 온 사연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온 얘기들이 무색할 정도였다.
‘올가미’ 시어머니
22살, 그녀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었던 준이 아빠와 결혼했다.
시어머니의 고집으로 설악산으로 1박2일의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집에 돌아온 후 침실에 깔려있던 이불 3채를 보고 나서야 의심스러웠던 주위의 소문과 걱정이 기우가 아님을 알게 됐다.
시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애정은 정상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그녀가 해 준 음식을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하고, 애를 낳지 말고 나가서 돈을 벌어 오라고 채근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계단에서 며느리를 밀어 치아가 부러져 나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씨는 시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결국 임신을 했고 무거운 몸으로 출산 세달 전 까지 스팀세차 사업을 벌였다. 애를 가지면 남편도 정신을 차리겠지 기대했지만 여전히 남편은 술과 도박을 즐겼고 엄마와 친구가 가정보다 우선이었던 사람이었다.
친정에서 할머니가 두 분이었고 그 관계가 너무 싫었던 이현정씨는 그래도 이혼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참는 데까지 참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뱃속 아이를 지우라며 산부인과로 현정씨를 데려다 주던 시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결국 수많은 아픔 끝에 5년 전 법원에서 이혼을 확정한 그녀는 작년에는 남편으로부터 준이에 대한 친권포기각서 까지 받고 성(姓)도 바꾸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싱글맘이 겪어야 했던 삶의 굴곡
이혼 후 싱글맘이 된 그녀. 마음은 조금 홀가분해졌을지 몰라도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식당서빙, 야간 전단지 배포, 마트 캐셔 등 여기저기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녀는 2007년 둘째인, 딸 준서의 아빠를 만나게 됐다. 어렵지만 새 인생, 새 출발을 다짐하던 그녀에게 이번에는 또 다른 세파가 휘몰아쳤다. 증권회사에 다니던 동생이 친정과 새 남편의 재산까지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가 그만 모두 날리게 된 것.
그 여파로 지금까지도 준서 아빠는 빚쟁이들을 피해 다녀야 하고 부모님은 의료보험료만 400만원이 연체됐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큰 아들 준이는 종종 만날 수 없는 아빠를 찾으며 혼란스러워 하지만 엄마는 뾰족이 설명해 줄 길이 없다. 준이의 소원은 아빠와 함께 야구장에 한 번 가보는 것이라고 한다.
자립할 수 있을 때 까지만이라도…
현정씨는 다행히 천안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이도 고치고 전세보증금 소액대출까지 받았다. 또 얼마 전부터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돼 얼마간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매월 그녀에게 지원되는 돈은 75만원 정도.
하지만 매월 집세 35만원,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 15만원, 수도·전기 등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10만원 가량으로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상황이다.
5년여 전부터 잘 때 눈을 감지 못하고 자는 준이는 아침이면 안구가 건조해져 치료를 서둘러야 하지만 형편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1~2년 정도 둘째 준서만 어디에 맡길 정도만 되도 무슨 일이라도 해서 자립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
많지 않은 나이에 복지사각지대에서 힘겨워 하는 그녀는 오늘도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