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흙을 민간요법의 한 재료로 써왔다. 배탈나면 황토수를 마셨고, 독충에 물리면 황토를 발라 독을 뺐다. 이같은 민간요법은 거의 모든 질병에 걸쳐 이뤄졌다. 이것은 흙의 약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흙을 이겨 방바닥을 깔고, 천장을 이고, 벽을 쳤다. 그것은 결코 원시적인 주거형태가 아니다. 경험에서 나온 지혜의 결정체였다.”
자연건강연구가 김정덕씨(67?병천면 탑원리). 사람들은 그를 아우내 황토할머니라 부른다. 김 할머니는 황토할머니라는 별명 그대로 황토에 대한 예찬이 끊이지 않았다. 60대 후반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지만 할머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 할머니는 황토와 관련된 각종 고서를 수집 분석하고, 전국의 수많은 사례담과 자연생태도 관찰하며,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황토철학을 간직하고 산다.
황토로 만든 김 할머니 사랑채 뒤뜰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그 앞엔 따뜻한 봄햇살을 맞으며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가 유난히 빛났다. 집구경에 넋을 잃고 있는 방문객에게 김 할머니가 내민 것은 탱자를 발효시켜 만든 음료, 그리고 쑥과 콩을 넣어 만든 떡이었다.
“요즘 신세대 표현으로 먹으면 뿅 갈거야”라며 음식을 권하는 김 할머니 모습엔 때묻지 않은 순수가 배어 나왔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푸른하늘 은하수에 하얀쪽배 띄우는 어릴적 고향을 재현하고 싶다. 땅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산천정기(山川精氣)를 배울 기회가 없다. 모든 생물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듯 인간도 그래야 한다.”
전국 각지의 건강강연과 TV방송출연, 원고청탁 등으로 분주한 가운데 요즘은 겨우내 쉬었던 황토벽돌 제작을 다시 시작했다. 흙벽돌을 생산해 내면 전국에 산재한 황토 찜질방이나, 건축업자, 황토 전문가들이 물건을 인수해 간다.
이같은 작업들은 황토할머니의 황토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서 시작됐다.
“모든 생명체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생활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도 흙과 떼어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생명의 원천인 이 흙이 각종 공해로 썩어가고 있다.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생활오수가 흙 속으로 스며들고, 공장폐수와 흙 속에 중금속을 축적시키고 있다. 각종 폐기물이 땅에 버려져 우리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황토할머니는 흙의 고마움을 강조하며, 그 풍요로운 자연을 훼손시키는 인간은 그 혜택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황토할머니의 황토예찬
황토가 건강에 좋아도 현대 도시인들이 생활 속에서 황토를 이용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황토할머니가 제안하는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황토할머니는 그의 저서 ‘황토집과 자연건강법’에서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을 인용했다. 그는 황토 뿐만 아니라 61종으로 나눠진 흙에 대해 설명하며, 각각 그 효능과 이용법을 정리했다.
흙의 효능은 부녀자가 한기들었을 때, 체증이 오래돼 뱃속에 덩어리가 질 때, 여자의 성기가 헐어 붓고 아플 때, 불임, 설사, 코피를 멎게 할 때, 독초를 먹었을 때, 옷에 기름때가 묻었을 때, 데었을 때, 빈사상태때, 알레르기나 아토피성 피부염, 공해나 담배에 찌들었을 때, 더위먹었을 때, 임산부의 출산이나 산후통, 치질, 학질, 종기, 고름제거, 황달, 열병, 어지럼증, 피가래, 구토, 이질, 야맹증 등.
각 증상마다 이용방법은 다르다. 특히 부인병과 소아병에 좋다는 설명은 모든 기록의 공통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물론 과학이나 의학적으로 그 효능과 가치가 입증된 것도 있지만 아직 미확인된 것도 많다며, 첨단 과학시대에까지 민간요법으로 전해지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옛 문헌과 실생활에서 또는 이웃들의 인생경험담을 들으며, 그 나름대로 연구해 터득한 지혜들은 그칠 줄 모른다.
김 할머니는 자신의 며느리와 세명의 손자도 자신의 의지와 신념대로 태교에서부터 산후조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산부인과 의사와 의견이 달라 다투었던 내용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제 김 할머니는 병하나 없이 잘 자라주고 있는 손자들이 대견하다며 회고한다.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며
언제부턴가 황토열풍이 유행처럼 번져 황토목욕, 황토 찜질방, 황토옷, 황토 화장품, 황토음식까지 생겨 이제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렇다면 할머니가 꿈꾸던 황토세상이 만들어진 것일까.
황토할머니의 작은 꿈은 황토마을, 황토세상만은 아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그런 세상을 그리는 것이다. 할머니는 시장보러 들로 나간다고 했다. 가족들이 손수 재배한 무공해 야채를 뜯으러. 때론 사람의 손이 전혀 가지 않은 자연에서 나고 자란 나뭇잎, 풀잎을 캐서 식단을 푸짐하게 꾸미기도 한다.
꽃다운 30의 나이에 청상이 돼 이 땅을 떠났던 황토할머니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에 동화되라며 말하고 있다.
-황토할머니의 비밀
김정덕 황토할머니가 서른 둘 되던 해 남편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당시 홀로 남은 김 할머니가 택한 길은 일본유학.
30대 초반의 김 할머니는 일본에 유학해 의상디자인과 생활미술을 공부하면서 풍토식 연구와 자연건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40대 후반이 돼서야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김 할머니는 자연식 먹거리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88년 가을, 서울을 떠나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에 자리잡고 자연농법으로 밭을 일구고 산야초와 들꽃을 벗삼으며 황토집을 짓고 산다.
류머티즈와 만성병을 전통먹거리를 통한 식이요법과 황토요법으로 물리치고 황토집에서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황토건강법’과 식이요법 건강모임을 만들어 후진 양성을 위한 강의에 분주하다.
황토집짓기, 황토욕법, 지장수 만들어 마시기, 젊어지는 건강미용법 등의 건강법 등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변화무쌍한 자연이 가져다 주는 천연의 혜택을 알알이 주워담는 김씨는 연중 바쁘다. 풀잎이나 꽃으로 만드는 효소조미료, 들꽃과 견과로 무명이나 비단에 물들인다. 회원들과 전통 장담그기도 즐긴다. 현재 황토방사람들 회장, 한국자연건강회 이사, 산야화초물들이기 모임 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방송사나 전국 각지를 돌며 건강강좌를 실시하고 있으며, 저작활동도 활발하다. 이제는 조용한 초야에 묻혀 후진양성에 힘쓰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