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효부 자랑 좀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지극정성인지 모른답니다. 돈많고 건강한 부모 모시는 일은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대소변도 못가리는 병든 시부모를 10여년간 묵묵히 극진봉양해 온 이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효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요.”
신부동 5길과 신원길이 만나는 길목 단독주택가. 10년 전인 92년부터 이 곳 사람들은 ‘능수회’라는 친목단체를 결성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삭막해져가는 도시생활 속에서 이웃간 모임을 갖고 지속시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일.
모임을 결성하고 초대 회장까지 역임했던 김옥자씨와 그의 남편 박창서씨는 이 곳에서 만난 그들의 이웃을 널리 소개하고 싶어 했다. 지난 3일(일) 두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인터넷을 통해 미담을 널리 전파하는 방법을 택했다.
미담의 주인공은 우명숙씨(48). 26년 전 간호사였던 우씨는 3남2녀의 장남인 현재규(50?현 입장 양대초등학교 교감)씨와 결혼해 남매를 낳고 평범한 가족의 행복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시부모의 건강 악화가 우씨의 자유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우씨의 시아버지 현기능(81)씨는 13년전 척추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아 다시 5년 후 2차수술까지 받았다. 그러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혼자 힘으로는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됐다. 거기다 치매까지 더해져 이성적 판단능력마저 상실해 버렸다.
이제 시아버지의 남은 삶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게 됐다. 당시 우씨는 너무나도 암담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현씨가 2차수술을 받았던 그 해 시어머니마저 암으로 자리에 눕게 됐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우씨는 먼저 시한부인생을 사는 시어머니의 여한(餘恨)을 남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막내(3남2녀) 시동생의 결혼식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갖은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보살펴 결혼식 당일 예식장에서 막내의 혼례를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시어머니는 병든 남편과 자식들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시아버지의 치매증상과 병환은 더욱 심해졌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차례 힘겨운 고비도 넘겼다. 우씨는 시아버지와 맺은 인연이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은 시간동안 우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자 한다.
날씨가 맑은 날은 휠체어로 마을골목을 산책시켜 드리고, 평소 시아버지가 좋아했던 음식도 만들어 드리며 그렇게 정성을 다하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 둘러보면 병든 시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세심한 배려가 눈에띈다. 구석구석 설치된 장애인용 손잡이와 티하나 없이 말끔하게 단장된 시아버지의 방은 남편의 서재로 연결돼 있다. 항상 옆에서 지켜 드리겠다는 자식들의 정성스런 배려들이다.
또한 남편 현재규씨의 서재는 각종 표창패로 가득 차 있다. 그 모든 것이 우씨의 내조 결과물들로 보였다.
자녀들에 대한 주위의 칭찬도 자자하다. 아들 종호(25)씨는 치대에 재학중이고 딸 혜진(23)씨는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다. 외지에 나가 있는 두 자녀도 집에 머무는 동안은 어머니가 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를 정성껏 모신다.
착한 며느리로, 현명한 아내로, 장한 어머니로 집안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우명숙씨야말로 이 시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장 아름다운 여성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