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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붕괴, 이대로는 안된다-시련의 연속, 벼랑 끝에 선 농촌

등록일 2001년12월2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수확을 마치고 긴 휴식에 들어간 농촌 들녘은 평화롭게 보인다. 간간이 볏짚을 태우며 들녘에 서있는 농부의 등뒤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더 없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 보면 외발 자전거처럼 불안하게만 보인다. “내년엔 무슨 작목을 심어야 돈 좀 만져 볼 수 있을까.” 요즘 농촌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해마다 이맘때면 으레껏 나오는 말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심하다. 쌀농사 이외엔 특별한 영농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으며, 다른 작목으로 전환할 엄두도 낼 수 없는 고령화되고 황폐화되는 농촌. 그나마 남아있는 젊은 농부들마저 생활비 마련을 위해 도시로 떠나고 있다. 농사만 지어서는 도저히 생활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주업이 전도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농촌붕괴 징후가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답팔고 도시로 떠나고 싶다 요즘 농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몇가지 현상들이 있다. 농한기를 이용한 농민들의 아르바이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전?답 매물이 쏟아지고, 농촌을 찾았던 귀농인들이 다시 도시로 떠나고 있다. 그것은 도시가 농촌보다 좋아서가 아니다. IMF 이후 침체됐던 도시 경기가 회복돼서는 더더욱 아니다. 농촌에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석(38·가명)씨가 대표적 사례. 김씨는 아침마다 마을어귀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시내에 있는 한 공장의 생산직 근로현장으로 떠나기 위해서다. 한달에 80만원의 정해진 급여와 휴일과 야간까지 열심히 일하면 1백만원이 넘는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자에게 1백만원이 결코 고임금은 아니다. 4인 1가구라면 한달 생활도 빠듯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 임금의 도시생활이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 보다 더 낫다고 한다. “농사 지으며 빚만 늘리는 것보다 적은 임금이라도 막노동이 속편하다. 생산라인이나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연일 가슴 졸이며 속태우는 것 보다는 편하다. 노동을 제공하면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기 때문에 일할 의욕도 생긴다. 일년내내 농사지은 것이 겨울철 3∼4개월 품삯 보다도 못할 때가 많다.” 김씨뿐만 아니다. 남편은 농사짓고 아내는 인근 공장이나 식당에 다니며 생활비를 조달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자식에게 농사만큼은 짓지 않게 하겠다고 논?밭 팔고 빚까지 얻어가며 교육열을 올리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 그때 그 농부들의 심정이 21세기 첫해인 오늘도 조금도 변치 않고 있다. 요즘 아르바이트가 한창인 김씨는 도시와 농촌의 두가지 생활을 저울질하며 농업을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현재 읍·면 지역은 농업을 포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농지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산비조차 제대로 건지기 힘든 상황에서 땅을 늘리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때문에 이런 땅들은 가격 폭락으로 이어진다. 천안시 입장면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해마다 농지매물이 늘고 있는 추세다. 올해는 유난히 심하다. 시세가보다 낮아도 좋으니 빨리 처분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천안농민회 박현희 정책실장은 “이미 예견됐던 수순 아닌가.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농촌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떠나는 이들을 누가 말릴 것인가. 30∼40대의 상당수 농민들이 이농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산다 김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빨리 농지를 정리하고 도시로 떠나고 싶어한다. 전·답을 팔아 도시에 거처를 마련하고, 부부가 열심히 일하며 몇 년간 저축하면 작은 가게라도 하나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정수 천안농민회 총무부장은 “농업의 붕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것은 물론 국가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농촌과 농업의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이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도시 근로자들은 농촌에서 급격히 유입되는 인력과 생존경쟁을 해야 한다. 때문에 농업이 붕괴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될 예비 피해자다. 근로자 뿐만 아니다. 농지를 처분해서 얻은 소자본으로 가장 쉽게 창업할 수 있는 것은 식당을 비롯한 각종 소점포일 것이다. 그들 역시 농업붕괴로 손해를 입게 될 예비 피해자다.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노점상, 일용직, 계약직 근로자 등 대부분 도시 서민층들이 농촌에서 유입된 인력들과 소모성 경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단편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는 같은 땅에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심각한 환경문제와 식량난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값은 기름값보다도 비싸다. 식량 자급률은 30%도 안된다. 한반도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 국토가 황폐화되고 있다. 쌀 산업은 농민이 의도했건 안했건 홍수예방과 대기정화, 수질보전 등 그 역할과 기능은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도시민들도 누구의 의지와 상관없이 농촌으로 인한 무한한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누리고 있다. 돈으로 환산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환경적인 측면만 고려해도 연간 8조∼13조원에 해당되는 액수다. 정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논은 국내 홍수조절용 6개 댐(15억14만톤)의 1.5배에 해당하는 23억톤을 가둘 수 있다. 또한 연간 2천6백만톤의 토양유실을 방지한다. 뿐만 아니라 연간 2천5백80만톤의 탄산가스를 흡수해 1천6백80만톤의 산소를 생산하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을 정화시키며 지하수 오염을 감소시킨다. 특히 논이 연간 지하 침투량 3백50억톤 중 1백57억톤을 지하수로 저장함으로써 수자원을 보호하고 있다. 이는 소양댐 저수량의 8.3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달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비는 80㎏당 16만5천8백59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산지 거래가 16만5천8백59원보다 9% 이상 높고, 금년 정부의 약정수매가 16만1백60원 보다도 3% 높은 가격이었다. 우리나라 전체농가의 50%가 넘는 농민이 쌀을 생산하고 있다. 그들은 생산비도 못건지는 농촌현실을 비관해 농업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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