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안정, 농가소득 보장하라! 농민 생존권 말살하고, 식량안보 위협하는 정부를 규탄한다.”
요즘 전국은 쌀값보장, 농가소득안정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절규가 메아리치고 있다. 시위에 가담한 농민들은 갈라진 주먹을 하늘높이 치켜 올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폭설과 혹한, 봄가뭄을 이겨내고, 풍성한 결실을 맞은 농민들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또다시 볼모로 잡히게 된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시위대 중에 유난히 부리부리한 눈과 다부진 몸, 검고 강한 인상을 풍기는 정재국(43)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도 지난달 4일(일)부터 천안시청뜰에 볏가마를 야적하고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간 농민들과 함께 했다.
정씨에게 주목한 이유는 정씨는 해마다 이맘때면 손수 수확한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며,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겨 왔었다. 그러던 그가 요즘 농민운동가로 변신해 대정부 투쟁의 최일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정씨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과 생필품을 전달하며, 남모르게 선행을 베풀고 있었다. 그러다 정씨 주변사람들이 알게 되고,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씨 주변사람들조차 정씨가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뿐만 아니라 정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을 매년 몇 명씩 선발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이렇게 도와준 학생들이 몇 명이고 누군지도 본인 이외엔 모르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어려울 때는 은행의 대출까지 얻어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중단하지 않았다.
정씨는 올해도 거르지 않고 지난달 22일(목) 농성장을 떠나 천안농민회 입장지회 회원들과 함께 입장면 관내 어려운 이웃 20가구에 쌀과 라면, 비누, 치약, 샴푸 등 생필품을 전달했다.
이밖에도 정씨는 언제나 마을 안팎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대해 정씨가 투박한 말투로 툭 던진 한마디는 간단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우리 이웃이 남인가.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군가 도와야 한다. 그것이 세상사는 이치 아닌가.”
그는 현재의 농촌문제를 이 정부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농촌에 대한 도움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정당한 보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금까지 정부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며 농업을 희생시켜 왔다. 땅의 정직함만을 믿고,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우직하고, 순박한 농민들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희생을 강요당해야 했다. 농민들은 언제까지 국제화라는 미명하에 협상의 볼모로 잡혀 생존권마저 위협받아야 하는가. 농촌이 무너지면 국가 전체가 무너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왜 모르는가.”
이제 그가 농민운동가로 나서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농촌의 하루는 연초부터 숨가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