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식(54)씨는 17년째 천안시청 건물의 한 모퉁이를 지키며 구두를 닦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같은 자리를 지켰다. 이제 발만 봐도 이 사람은 어느 부서 누구라는 것까지 파악할 정도다.
그의 하루는 시청 직원 출근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시작한다. 또한 시청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요즘은 하루에 70∼80켤레의 구두를 닦는다. 매일 닦는 시청 직원들에겐 한달에 7천원씩 받고, 일반인들에겐 5백원부터 2천원까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고객과 흥정이 아닌 고객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명덕식씨는 한 번이라도 안면이 있거나 자주 찾는 고객에겐 할인혜택과 함께 가끔 서비스로 무료봉사도 제공한다. 그러나 고객이 미안한 마음에 봉사료를 지불하면 여지없이 그만의 또 다른 금고로 들어간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푼 두푼 모으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20만원이 넘은 것 같다. 명덕식씨는 이 돈을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그가 소년소녀 가장이나 고아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천안에 오게 된 것은 11살 쯤. 어릴 적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다. 아버지는 병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과일로 기억되는 물건을 가지고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보따리 장사를 하셨던 것 같다.
학교는 문턱에도 못가봤다. 어린 시절 천안경찰서에서 실시한 불우청소년을 위한 야학에서 어렵게 글을 익혔다는 사실 밖에는.
그에게 더 이상 학업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며 몸으로 체험한 사회 규칙들이 교육의 전부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도 배우지 못한 넉넉한 사랑을 배웠다.
언제부턴지 그에게 버리지 못할 습관 하나가 생겼다. 수중에 있는 일정 금액을 발밑에 모아두는 것이다. 그러다 일정 금액이 모아지면 자신보다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는다.
한 평 남짓한 그만의 작업공간. 바닥은 찌든때로 얼룩진 장판이 깔려 있다. 장판을 떨치자 그가 모아온 동전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10원짜리부터 5백원짜리까지 그의 넉넉한 인정이 가득 묻어난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앞으로도 살아갈 계획이다. 많은 지식은 없어도 더불어 살아가는 넉넉한 지혜가 가득하다.
그는 천안시청 기사대기실을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다. 보다 따뜻한 휴식공간이 필요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기 때문이란다.
명덕식씨는 4급장애를 가진 아내와 대학 재학중인 아들, 고교생인 딸이 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이다. 자신밖에 모르는 삭막해가는 사회에서 명덕식씨의 푸근한 이웃사랑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