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을 앞둔 황금들녘에서 풍년가 대신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 콤바인이 아닌 트랙터가 논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결실을 눈앞에 둔 벼이삭을 짓밟으며 갈아엎었다.
최근 재고 급증으로 인한 정부의 쌀 증산포기 정책과 맞물린 쌀값 하락 등으로 농민들의 위기의식은 추수파업에까지 이르렀다.
논산시농민회(회장 김완식)는 지난 17일(월) 농민 1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논산시 가야곡면의 논 2천6백40㎡를 2대의 트랙터를 동원해 갈아엎으며 추수파업을 선언했다. 이를 기화로 전농 충남도연맹(의장 정수용)은 쌀값 보장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각 시·군에서 추가로 갈아엎을 것이며, 추수파업 투쟁은 계속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전농 충남도연맹은 대전역에서 1천5백여명의 각 시군 농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쌀값 보장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충남농민투쟁을 선포했다.
이날 대전역에 모인 충남도연맹 회원들은 볏가마를 불사르며 정부의 쌀 정책에 대한 농민의 반감정을 표출했다.
이어 대전역을 나선 농민들은 깃발을 세우고 도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도청에 도착한 농민들은 청사 내부로 진입하려다 저지하는 경찰병력과의 몸싸움으로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부상을 입은 천안농민회 류진형 사무국장은 오른손 동맥이 끊어져 대전에서 응급수술을 받은 후 천안으로 이송 입원 치료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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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농 충남도연맹은 ▲실천가능한 충남도 쌀수급 및 가격안정에 대한 대책기구를 9월말까지 구성 ▲구성된 기구를 통해 쌀 직접지불제도 도입 등 4개항을 정부에 건의할 것 ▲지방정부 차원의 대안을 함께 숙의하고 단계적 시행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으로 심대평 충남도지사 명의의 서면약속을 이끌어 냈다.
지난 20일 한국농업경영인중앙회 시군회장단을 비롯한 농민 3백여명은 수확을 앞둔 아산시 배방면 구령리에서 2천5백평의 논을 갈아엎으며 정부의 쌀값 보장을 위한 특단의 조처를 요구했다.
이날 집회를 주관한 아산시농업경영인회(회장 장석철)는 7대의 트랙터로 2천5백평의 논을 갈아엎고, 볏가마를 불사르며 정부의 농업정책을 강력히 규탄했다. 또한 상여를 메고 불타는 볏가마 주변을 돌며 장송곡을 울렸다.
아산시농업경영인연합회 장석철 회장은 “풍년으로 기뻐해야 할 시기에 자식처럼 기른 벼를 땅속에 갈아 엎어야 하는 농민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라며 “농업의 근간인 쌀값 보장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없는 한 제2, 제3의 투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농연은 오는 27일(목)까지 농민들이 공감할 만한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28일(금) 도연합회 차원의 집회를 열 계획이며, 이때도 만족한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10월5일(금)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농촌은 그 어느 해보다 힘겨웠다. 폭설과 혹한이 모진 시련과 고통을 안겨 주었고, 최악의 봄가뭄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이 모든 자연재해를 힘겹게 극복하고 맺은 풍성한 결실을 이제는 농민 스스로 땅속에 묻고 있다.
<이정구 기자>tant@icross.co.kr
농민들은 무엇을 주장하나
농림부는 지난 4일(화) 쌀산업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증산정책을 지양하고 미질위주로 전환한다는 것 ▲ 2004년 이전에 양곡관리법을 개정,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비상시에 대비한 쌀만 시가로 사들이는 공공비축제를 도입 ▲가격 하락시 소득보전방안을 도입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들은 양정정책에 있어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시장기능에 맡기려는 의도라며 결국 쌀농사의 강제적 구조조정이 실시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농 충남도연맹(의장 정수용)은 북녘 쌀보내기 운동을 통해 재고미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전농 충남도연맹 산하 13개시군 농민회는 전쟁분위기를 부추기며 무기를 사들이라고 강요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 굶주리는 북녘동포에게 쌀을 보내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경제적이며, 평화적이고, 통일로 가는 지름길임을 강조했다.
정수용 전농 충남도연맹 의장은 “옛부터 한반도는 북쪽 산악지대의 풍부한 지하자원, 옥수수, 감자 등과 남쪽 평야지대의 쌀, 과일 등을 서로 바꾸고 부족한 부분을 해결해 왔다”며 “통일을 준비하고 장기적 통일농업의 실현과 세계적 경쟁농업을 이룩하기 위해 현재 남한에 남아도는 쌀은 북한 동포의 몫으로 보내져야 하는 것은 쌀문제 해결을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중심대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전농 충남도연맹은 지난 13일(목) 농협충남지역본부에서 실시하려던 정부벼 공매를 저지했다.
전농충남도연맹은 성명서를 통해 “수확기를 앞두고 정부가 벼 공매를 실시하면 시장에 유통량이 늘어 쌀값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매제도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쌀을 제외한 어떤 농축산물도 가격안정을 이루지 못한 상황인데 수매제도마저 없애면 쌀농업은 자립기반을 잃고 결국 해외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수입쌀에 대한 철저한 유통 실태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95년부터 올해까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 의무적으로 수입된 쌀은 48만8천톤에 이른다. 수입쌀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충남 쌀 재고 얼마나 되나
농협 충남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말 현재 충남미곡종합처리장 쌀 재고량은 저장능력 11만3천7백여톤을 57% 초과한 17만8천8백여톤으로 조사됐다.
충남도내 총 36곳의 미곡종합처리장(RPC) 중 단 2곳을 제외한 34곳이 이미 저장능력을 넘은 상황이며, 저장능력의 2배 이상 재고가 남은 곳도 7곳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충남도내 5백98개 정부양곡 보관창고도 지난 8월말 현재 저장능력 36만여톤의 50%에 이르는 18만6백60톤이 재고로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의 재고량 12만9천6백톤에 비해 14% 이상 증가한 것이다.
식량창고가 넘쳐도 걱정인 것 같다. 최근 쌀의 수확량은 해마다 증가하는데 국민들의 식생활의 변화로 소비량은 오히려 급감하는 추세다. 범 국민적인 쌀소비 동참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