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밭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어린 채소들이 가을가뭄에 시들어가고 있다.
“올해처럼 지독한 악천후는 처음이다. 연초부터 시작된 폭설과 봄 가뭄만으로도 부족해 가을까지 이러니 한숨만 나온다. 특히 올해는 비 구경하기가 정말 힘들다. 시원한 빗줄기 한번 내렸으면 더할 바람이 없겠다.”
김진식(30·동면 장송리)씨는 요즘 ‘가을가뭄으로 인한 시름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채소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하늘만 바라보는 수밖에.
특히 작년 특용작물 재배의 실패에 이어, 지난 겨울 폭설과 함께 시작된 그의 시련은 가을까지 괴롭히고 있다.
“농업이라는 것이 본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다. 지독한 날씨와 열악한 농업환경 탓에 많은 농민들이 좌절을 겪고 있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작년에 식품가공공장과 계약을 맺고, 3백평의 시설하우스에 작두콩을 심었다. 잘 되면 시설을 넓혀 부농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수확기로 접어들자 식품가공공장이 갑자기 부도를 맞았다. 결국 판로가 끊겨 재배된 농산물은 집 한켠에 쌓아 두어야 했다. 농업유통구조의 취약성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지난 겨울 내린 폭설로 시설하우스 1천평 중 7백평을 잃었다. 당시 정부가 지원시책을 발표하자, 김씨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복구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정부는 시설복구를 먼저 끝내고 지원금을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당장 자금동원 여력이 없어 시설복구를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악몽같던 겨울이 지났다. 그러나 이번엔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사상 유례 없는 봄 가뭄을 겪어야 했다.
온 대지가 타들어가는 대자연의 횡포 앞에 저항능력마저 상실해 버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봄과 여름을 힘겹게 넘겼다.
그러나 야속한 날씨는 가을마저 그냥 넘기지 않았다.
김씨는 잎담배 농사를 마친 이웃의 밭 5천여평을 임대해 지난달 중순 씨앗을 심었다. 파종 당시 단무지 절임공장과 계약물량 을 정했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판로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그 꿈마저 여지없이 무너졌다.
파릇파릇한 어린 싹이 온 밭을 덮어야 할 시기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발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어린 새싹들은 새벽에 잠깐 내리는 이슬로 간간이 목을 축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여름 날씨와 다를 바 없는 초가을 늦더위는 힘겹게 돋아난 어린 싹마저 시들게 하고 있다. 대부분 채소밭이 김씨의 상황과 다를바 없다.
요즘 대부분 농촌실정은 김씨의 처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농민들이 모이면 좀처럼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각종 매스컴에서 떠드는 정부의 농업정책엔 ‘이젠 더 이상 농민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위기감만 맴돈다.
김씨의 푸념은 계속됐다.
“우린 아무런 욕심도 없습니다.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며, 그저 노력한 만큼만 소득이 보장되길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일까요. 열심히 일할수록 빚만 쌓이는 농촌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김씨의 간절한 절규는 결코 그만의 푸념이 아닐 것이다.
<이정구 기자>tant@icro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