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싱그러운 더해 준 은석사 ‘진달래 축제’ 사 향 김 상 옥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백양 숲 가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 보던 진달래도저녁 노을처럼 산을 들러 퍼질 것을.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음.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도 도로 애젓하오.김상옥 시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사향’ 이라는 시조 한 편을 떠올리게 하는 마을잔치가 지난 10일(일) 천안시 북면 은석사(주지 진용)에서 열렸다. 그곳은 움터오는 봄의 새싹과 풀밭 길을 끼고 도는 계곡. 봄의 절경을 만끽하며 숲 속 오솔길 사이로 걷기를 30여분. 이틀동안 내린 봄비로 산에는 온통 봄의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했다.산 중턱을 휘감고 있던 자옥한 안개도 어느새 걷히기 시작했다. 두메산골 작은 산사에 오랜만에 많은 상춘객들이 찾아왔다. 평소 이 작은 산사를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간혹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시골 어느 노모가 자식 앞날이 순탄하길 기원하며 쌀자루 머리에 이고 찾는 아주 적막한 곳이다. 이날은 천안시 북면 은석사(주지 진용스님)에서 ‘진달래 꽃 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러나 행사 전 날부터 봄비가 밤새 그치지 않고, 행사가 열리는 날까지 계속 내렸다. 진용스님이나 행사를 준비하던 신도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행여 찾아온 손님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비를 맞아가며 인근 읍내에서 구한 천막을 치고,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행사 당일에는 서서히 빗줄기가 수그러들더니 점심때쯤 되자 구름도 걷히고 활짝 개었다. 이 날 열린 ‘진달래 축제’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꽃샘추위가 오랫동안 머문 탓에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석사 주변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여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동네처녀 바람나는 화전놀이그렇지만 이 날 축제의 백미인 ‘화전놀이’에 쓸 진달래는 충분했다. 산중에서 직접 채취한 진달래가 수북이 쌓였다. 찹쌀가루를 정성스럽게 반죽해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위에 올리고 그 위에 갓 따낸 진달래 꽃잎과 잣, 대추로 마무리 장식을 마친 후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은 산행을 마친 이들의 시장기를 자극하다 못해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식용유와 만난 찹쌀가루 익는 냄새는 거의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먼 길 달려온 나그네에게 더 이상 체면은 남지 않았다. 화전놀이는 여성해방의 봄 축제로도 전해진다. 꽃피는 춘삼월 부녀자들이 모여 꽃놀이도 즐기며, 꽃잎으로 전을 붙여먹고 정보도 교류하던 전통적인 야유회다. 지역마다 조금씩 모습은 다르지만 화전놀이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가난한 어느 집안의 부녀자가 화전놀이에 참석했다가 집에 있는 부모나 남편, 아이들을 위해 자신은 진달래 꽃잎으로 배를 채우고, 화전을 싸서 집으로 가져갔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부터 동네처녀 바람난 남녀상열지사까지.갓 건져낸 쫄깃한 국수면발 일품절 마당 한 귀퉁이에는 커다란 솥이 걸리고, 장작불로 물을 끓여 국수를 삶았다. 매캐한 연기에 눈물 흘리며, 후후 불어 붙인 장작불은 순식간에 물을 끓게 만들었다.희뿌연 수증기를 뿜어내며 국수가락 흩어지는 모습은 배고픈 나그네의 체면 따위는 단숨에 날려 버렸다.그 어느 점잖은 미식가도 이날, 이 곳에서 국수가 익을 때 나는 독특한 향기를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한 젓가락 크게 감아 입 속에 집어넣고 싶다는 욕망 이외에는.아낙들은 펄펄 끓는 솥에서 국수를 건져 차가운 지하수에 푹 담갔다가 큼직큼직하게 덩어리를 만들어 그릇그릇 담아냈다. 시장기에 이끌려 길게 늘어선 방문객들에게 국수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나무젓가락 하나씩 배급됐다. 땅 속에서 발효시켜 시원하면서도 상큼하고, 시뻘건 국물이 뚝뚝 흐르는 배추김치와 다시마 육수냄새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무젓가락 하나 들고 배급순서를 기다리는 나그네에게 ‘이거 내 앞에서 음식이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조바심마저 들게 만들었다.대자연과 더불어 숲 속에서 먹는 국수 맛이 천상의 맛은 아니었는지?국수와 화전으로 허기졌던 배를 달래자 전북 전주시에서 방문한 ‘설화차회’ 회원들이 각종 전통차를 제공했다. 이들은 진용스님과의 인연으로 천안 은석사까지 기꺼이 달려왔다고 한다.자연과 닮은 산사에서 우리 가락을“얼쑤, 얼씨구, 좋다.”점심을 마친 방문객들은 대자연 속에서 우리가락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전국 최고의 사물놀이패로 알려진 병천고 ‘천음패’의 사물놀이와 충남도립연정국악원 조성환 수석단원과 홍성 결성민요 이은우 전수자의 판소리, 전옥주(전 청주시립단원)씨의 가야금연주 등을 펼쳐 심금을 울렸다.공연이 끝나자 탱화작가인 고해스님이 즉석에서 ‘달마도’를 소재로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천방망이에 먹물을 듬뿍 찍어 광목에 힘있게 그려내는 솜씨와 손에 먹물을 묻혀 세부묘사를 하는 모습에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두메산골 작은 산사에는 오랜만에 많은 상춘객들이 찾아와 세월의 때를 벗고 자연에 동화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절 앞마당은 어느새 어린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해 버렸다.은석사 주지 진용 스님은 “올해는 진달래가 늦게 피는 바람에 절정의 경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남지만 세상의 모든 근심만큼은 이 산사에 벗어 던지고 가볍게 돌아가길 바란다”며 합장했다. 진용 스님은 올 가을엔 ‘단풍잔치’를 통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