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지리도(1592년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구끼(九鬼) 등이 제작한 지도로 1872년에 다시 모사되었다. 8도총도와 강원도 부분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표기했으며, 일본 최초로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식 명칭으로 표기한 지도다.
독도 1500년 풍상의 기억들, 명확한 사료로 입증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지난 3월17일 일본대사관에서 개최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및 독도침탈 규탄대회’에 이어 독도가 분명한 우리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역사적 자료를 종합 전시해 전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독도! 1500년 풍상의 기억들’이라는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지난 1일(금)부터 1개월간 민족전통관(제1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이 기획전에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당시 한국과 일본의 영토와 영해를 확정할 때 제출된 영국 측의 공식지도,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최초로 기록한 ‘삼국사기’ 등 자료들과 관련 지도, 그리고 1877년 일본 최고기관인 태정관이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것을 인정해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기록한 공문서와 지도 등 역사자료 20여 점(1부)이다. 또한 독도일출도(서울대명예교수 이종상)와 독도판화(서울대미대교수 한운성) 등 독도관련 예술작품 17여 점(2부)이 전시되어 독도에 대한 현재와 과거, 예술과 자료의 만남이라는 이색적인 전시로 구성하여 독도는 분명한 우리의 영토임을 확인하고 독도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주권수호 의식을 갖도록 하는 전시회이다.독도는 512년 신라에 편입된 이후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분명한 우리 고유의 영토로 기록(삼국사기)돼 왔다. 그러나 일제는 한국에 대한 침탈을 본격화하면서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던 해인 1905년 2월 22일 러시아의 군사적 진출을 저지할 목적으로 독도를 강탈(시마네현 고시 40호)했다.이처럼 강탈한 독도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이 패전국인 일본의 전후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독도귀속에 대한 연합군의 문건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한반도에 대한 일제 강점기에 점거했던 독도를 해방된지 60년이 된 현재까지도 자기네 영토라며 침략근성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당시 미국과 함께 일본의 영역을 확정짓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영국의 공식지도에 독도는 한국의 영토임이 기록된 지도가 발굴되어 일본의 주장이 허구임을 만 천하에 명백히 드러났다. 독립기념관은 앞으로도 외세로부터 주권침해와 역사왜곡에 대한 실태와 국민의 경각심 재고를 위한 민족의식 고취사업을 계속 할 것이며, 특히 다음 달로 검정이 예정된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과서에 대한 전시회를 4월 중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