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독립기념관에 건립된 이동휘선생 어록비
애국계몽운동 투신,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역임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 어록비를 건립해 조향록(성재 이동휘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윤병석(인하대 명예교수), 이재선(하빈이씨대종회 회장) 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일(수) 11시에 제막행사를 가졌다. 이동휘 선생은 1873년 6월20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한성무관학교를 수료하고, 참위로 임관한 후 1903년 강화진위대장에 이르기까지 무관으로 헌신했다.1905년 을사5조약 강제체결을 전후해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하고 미국인 선교사 벙커(A.D Bunker)와 함께 합일학교를 설립했다. 강화진위대장 사임을 전후해 보창학교를 설립해 인재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국민교육회에서도 활동했으며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해 국채보상연합회 총무를 지내기도 했다. 한말 최대의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 창건에도 합류해 함경도지부 도책을 맡았다. 1911년 이동휘는 북간도와 연해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북간도에서 비밀결사 광복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의 터전을 닦고, 1913년 연해주로 건너가 권업회를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을 규합해 대한광복군정부를 건립했다. 이동휘는 1918년 4월 28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조직하고 연해주를 거점으로 한인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1919년 11월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해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1926년 3월 고려혁명당 등의 조직을 주도하면서 무장투쟁노선과 사회주의 혁명노선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블라디보스톡에서 혁명운동자 및 그 가족의 구원을 사명으로 하는 국제혁명운동희생자구원회(MOPR) 시간부 조직지도원, 1930∼1935년까지 변강국제혁명자후원회 간부로 활약하면서 원동 변강의 한인 거주지역에 국제혁명자후원회 세포를 조직했다. 이처럼 열성적인 활동으로 1932년 10월12일 원동 변강 모플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후 1935년 1월31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서거했다.이동휘는 대한제국 무관으로, 애국계몽운동의 선도자로, ‘독립전쟁론’의 혈전을 위한 독립운동 지도자로, 한인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서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과 열정을 불태웠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