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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식되는 유골들…큰비 올 텐데 어쩌나

충남도와 공주시 100여 구 희생자 유해 외면 언제까지

등록일 2013년07월05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공주 왕촌 살구쟁이. 1950년 7월 이곳에서 집단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국군과 경찰은 공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500~700여 명을 이곳에서 집단 총살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0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1950년 7월9일께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을 공주 CIC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이 집단학살한 일은 ‘진실’이며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2009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 현장에서는 317구의 희생자 유해가 수습됐습니다. 조사결과 구덩이 안에 몰아넣고 쭈그려 앉은 자세에서 총살한 후 그대로 매장했습니다. 유해를 흙으로 덮지 않고 큼지막한 돌덩이로 눌러 놓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추가로 드러난 약 80∼90여 구의 유해…5년째 방치

하지만 유해수습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해 발굴에 앞서 폭우에 대비해 굴착기로 배수로를 정비하던 중 나무뿌리에 사람의 뼈가 엉겨 붙어 드러났습니다. 배수로 위쪽에서는 다수의 머리뼈가 드러났습니다. 또 다른 새로운 유해매장지(5번째 구덩이)가 확인된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팀은 약 80∼90여 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계획된 4개의 구덩이에 대한 유해수습을 마친 발굴팀은 추가로 드러난 5번째 구덩이에 있는 유해를 수습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추가 예산이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예산이 지원되기만을 기다리던 발굴팀은 못다 수습한 유해를 남겨두고 결국 현장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발굴팀은 ‘유해 발굴 보고서’(2009년 말)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당초 진실화해위원회가 제시했던 조사지역 내 4개 지점(구덩이) 이외에 조사지역 밖에 다수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시간과 예산상의 문제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음을 아쉬워하며 이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계속돼야 할 것이다.”

박선주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단장은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 남아 있는 유해의 경우 부식속도가 매우 빨라 가능한 시급히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충남도-공주시, “‘중앙정부가 할 일…그런 돈 없다”

5년 가까이가 흘렸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 80∼90여 구의 유해가 여전히 그대로 묻혀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업무가 종료됐습니다. 충남도와 공주시는 ‘중앙정부가 할 일’이라며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습니다. 유족회에서 충남도(도지사 안희정)와 공주시(시장 이준원)에 수차례에 걸쳐 유해발굴에 필요한 인허가와 예산지원 등 행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탄원서도 내봤지만 허사였습니다.

곽정근 유족회장은 말합니다.

“충남도지사와 공주시장에게 간절한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중앙정부 일’ 이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불과 30평 미만의 땅에 묻혀 있는 유골마저 외면하는 현실이 비참하기만 합니다”

전국 유족회관계자도 말합니다.

“2010년 정부가 무고한 민간인을 불법으로 학살한 것은 잘못이라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습니다. 사과 이후 공주시와 충남도처럼 무심한 곳은 보다보다 처음입니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건과 관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할 화해조치의 하나로 ▲희생자 위령제 봉행 및 위령비 건립 등 위령사업 지원 ▲유해발굴과 유해안치장소 설치 지원 등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큰 비가 올 때마다 부모형제일지도 모를 유해가 쓸려나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충남지역언론연합 심규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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