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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는 동네북인가?

기고-천안서북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지방소방장 정왕섭

등록일 2013년05월1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서북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지방소방장 정왕섭. 얼마 전 언론에서 미국행 여객기 비즈니스석 대기업 임원이 승무원을 폭행했다는 보도를 보고 문득 저번 달에 있었던 씁쓸했던 일이 떠올랐다. 필자는 충남 제1의 수부도시인 천안에서 올해 18년차 소방관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그 동안 대부분의 기간을 119구급대원으로서 공공안전서비스의 최일선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119구급대가 출동하는 신고내용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 이웃들의 안타까운 삶의 고단한 단면이 녹아있는데 화재는 물론이고 사소한 생활 민원에서부터 갑작스런 질병의 발생, 참혹한 교통사고,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종다양한 사고, 있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자살사고 등 정말 급박하고 안타까운 사연도 적지 않다. 이에 우리 119구급대원 또한 이런 신고사항에 대해 적극 대처하기 위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야간근무 시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그 날도 출근해 밤이 깊어 자정이 돼갈 무렵이었다. 출동 대기실 무전기 스피커에서는 인근 119구급대원의 약간은 당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구급대원이 폭행당하고 있으니 즉시 현장으로 경찰출동 요청함” 이라는 내용이 들렸다. 마음 같아선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료로서 이내 달려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관내 출동관계로 안타까운 마음만 간직하고 사건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폭행자가 연행돼 사건은 일단락 됐다고 한다.

이튿날, 당시 촬영된 동영상을 보고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우리 119구급대원이 머리에 상처를 입고 도로를 향해 뛰어드는 취객을 제지하려하자 욕설과 함께 무차별로 얼굴과 다리 할 것 없이 마구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고스란이 녹화돼 있었다. 주변에서 간간이 시민들이 “아이고! 저걸 어째!” 하는 분노와 걱정이 섞인 안타까운 탄성이 연발되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 영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일순간 가슴 한구석에 분노와 함께 다른 한편으론 착잡한 심정이 교차됐다. 필자 역시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겪어보아 당시의 모욕감이란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이며 직업선택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우리 119구급대원 소방공무원은 국민이 부르면 불철주야 언제든지 달려가 도움을 주는 공복(公僕)이다. 옳다! 국민의 머슴이다. 대다수 119구급대원이 그러하듯이 필자 역시 출근하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출동해서 업무에 임하고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본인들에게 도움을 주러 달려간 사람에게 폭언과 욕설, 심지어는 서슬 퍼런 칼을 휘둘러 상해를 가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하는가 ! 

돌아보건대 예전 필자 신출내기 소방관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세상은 참으로 많은 분야에서 빠르게 바뀌었다. 소방조직 내부의 여건(소방인력의 2교대 근무방식에서 3교대근무 방식으로의 전환 - 여전히 일부 지역에선 2교대 근무방식임, 아직도 아쉬운 점이 있지만 소방장비의 현대화 등) 및 사회 각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미처 인간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숨 가쁘게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폭행당하는 119구급대원의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런 폭력은 사회에서 어떠한 상황과 수단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사실상 이런 119구급대원 폭행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소방방재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119구급대원 등 소방관 폭행사건은 264건이 발생했고 이중 89건이 사법처리 됐다고 한다(과거 실제 처벌되지 않고 합의 또는 유야무야 간과 돼진 건은 이보다 많다고 함). 그리고 이런 폭행사건의 가장 큰 주요 원인은 만취상태의 환자 혹은 보호자 등에 의해서 행해졌다고 하니 고질적으로 잘못된 음주문화의 획기적인 개선과 개개인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처벌수위도 강화돼 구급대원 폭행범의 경우 소방기본법 제16조 제2항 소방활동방해죄가 성립돼 이와 같은 몰상식한 행위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재론하지만 정상적인 사회체제에서 폭력은 어떠한 명문과 상황 하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아울러 오늘날 끊임없이 어디선가 발생되고 있는 119구급대원의 폭행문제를 포함해 대화와 타협,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하는 배려심과 함께 공동체 사회의 기본을 알고 지켜나가는 성숙한 선진 시민의식이 여러 가지 병폐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 가치관의 혼돈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삶의 가치인 듯 싶다.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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