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평교사로 학교현장에 있을 때의 일이다. 담임반 학생 중에 매우 뛰어난 영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수학을 가벼이 생각했는지 문제를 손으로 푸는 일이 없었다. 시험 때 푸는 일이 고작이었다. 평소에는 손을 쓰지 않고 눈으로 풀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수학공부였다. 성적 결과는 꾸준하지 못하고 기복이 심한 널뛰기였다. 여러 번 상담했고 차츰 습관을 고쳐 나갔다. 더 일찍 차근차근 끝까지 풀어 나가는 법을 익혔더라면 번뜩이는 영재성에 논리성이 더하였으리라 생각한다.
또 그 당시에는 속칭 ‘빽빽이’라는 것이 있었다. 연습장에 암기할 내용을 쓰고 또 쓰는 것이었다. 종이 한 면이 빽빽할 때까지 채우는 학생이 있었다. 어느 학생은 하루에 볼펜 한 자루를 다 쓴다는 학생도 있었다. 쓰면서 익힌다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반복해 쓴다는 것은 권장할 만한 방법이 아니다.
어느 중요한 사안이나 뜻 깊은 내용을 보고 메모를 잘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선천적으로 메모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메모하길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다. 메모장을 사서 처음에 열심히 서너 쪽 기록하고는 책장에 그대로 먼지와 함께 묵히는 사람도 많다. 메모하는 습관은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학생들은 대체로 손으로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컴퓨터 자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원고지에 또는 보고서 용지에 과제를 손으로 직접 써서 제출하는 것은 옛일이 되었다. 과거엔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작성하고 색다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컴퓨터의 간편한 기능과 출력물이 어느새 이를 대체했다.
논술시험에서 손으로 잘 쓴 한 편의 논술문을 보면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 전개는 물론이고, 신언서판이라는 말처럼 글씨에 모양새도 있다면 금상첨화다. 청서(淸書)한 것처럼 깨끗한 답안지는 압권이다. 이처럼 손으로 쓴 한 편의 논술문은 글의 구조와 내용, 단락의 흐름, 담긴 어휘, 구사된 서체가 총 망라된 종합예술품이다.
충남교육청에서는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해 쓰기 지도를 강조하고 있다. 평가에서도 주관식 문제 출제를 의무화했다. 주관식에서도 단답형은 지양하고, 한 문장 쓰기나 한 단락 쓰기 등을 중시하고 있다. 논술이나 생활문, 문학 등 여타 종류의 글짓기도 병행 지도하고 있다. 한 줄의 글이라도 혼을 담아 썼다면, 개인의 창의력이 담긴 소중한 정신적 가치다. 이러한 글쓰기 능력 향상은 학력증진에 보탬이 될 것이다. 글쓰기는 독서·신문읽기, 교과캠프와 더불어 충남교육청 학력증진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이다.
쓰기란 얼마나 중요한가?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표현 방법 밖에 없다. 바로 말과 글이다. 정성이 담긴 좋은 글은 자신의 소중한 생각이나 감정이 담겨 있는 응축된 열매며, 자신의 기품 있는 내면의 향기를 내품는 영원한 글꽃이다. 어릴 때 쓴 일기를 세월이 지난 후 우연히 보았을 때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수학은 눈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면서 풀어야 한다. 눈으로 푸는 수학, 듣는 수학공부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풀어서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수학 학습의 왕도이다. 손으로 풀면서 가정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증명을 도출할 때 객관적인 논리성을 지닌다. 계산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쉽고 단순한 문제라도 끝까지 쓰면서 풀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우리 충남의 학생들이 손으로 하는 공부에 더 충실했으면 좋겠다. 글쓰기를 재미있게 생각하고, 일기, 편지, 생활문 등을 자주 써보는 습관을 지녔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손으로 쓰는 글을 더욱 써 보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워드로 작성한 편지가 아니라, 손으로 써서 소식과 정을 전했으면 한다. 정을 주고받는 글쓰기 문화 속에서 우리 학생들이 바른 품성과 알찬 실력을 지닌 창의적인 인재로 커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