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세종시 원안 수정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한 이완구 충남지사. 하지만 이 전지사가 떠난 이후 충청남도는 세종시 입장을 급선회했다.
선출직 지사가 아닌 임명직인 행정부지사(이인화)가 도지사 권한대행을 하는 체계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충남도는 11일 오전 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성격을 전환하는 수정안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도민의 여론을 수렴해 필요한 경우 충청권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정부에 보완의견을 제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민 여론수렴’이라는 원론을 말하고 있지만 ‘보완의견 제시’라는 문구에서 드러나듯 사실상 수정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이 배어 있다.
실제 충남도는 “세종시 조기건설(30년→20년)과 자족용지 확대(148만 평→450만 평),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핵심시설입지, 주요대기업의 첨단산업시설 유치 등이 성사될 경우 세종시는 새로운 성장거점도시로 부상 가능하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지역경제 활성화 및 국가균형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남도는 수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지역주민의 상실감을 달랠 수 있는 정부의 설득과 대책과 제시된 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세종시 논란이 조기에 종식되어 세계적 명품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완구 전 지사의 지사직 사퇴카드에 대한 재평가 계기
수정안에 반대해 ‘원안사수’를 외치며 배수진을 치고 싸우고 있는 충남도민들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충남도지사 권한대행체계가 갖는 이 같은 한계는 이 전 지사의 지사직 사퇴카드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가 되고 있다.
당시 이 전 지사는 ‘지사직을 유지하면서 남아서 싸웠어야 했다’는 지적에 대해 “‘원안추진’에 대한 정치적 의사표시로 사퇴를 절박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나라당에 남아 세종시 원안사수를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갈등과 분열을 용광로에서 용해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지사의 지사직 사퇴는 소속 충남도의원들의 우려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성명을 통해 “도지사의 사퇴는 세종시 원안을 포기하는 모습을 도민들에게 각인시켜줌과 함께 원안 관철의 구심점 역할을 스스로 접는 무책임한 모습으로 비칠 것임이 ‘명약관화’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도지사를 사퇴하면 원안 추진의 동력을 급격히 상실할 것인바 중도사퇴는 전쟁에 임하는 장수가 취해야 할 판단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직 이 전 지사의 사퇴에 대한 평가가 섣부를 수 있다. 하지만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충남도의 수용태세는 이 지사에게 “소극적 사퇴라는 작은 명분보다 끝까지 투쟁하는 큰 명분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충남도민들의 평가와 진단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자유선진당, 삭발하고 장외투쟁 선포
11일 발표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자유선진당이 총력 저지를 선언했다. 당3역을 포함한 의원 5명은 국회에서 삭발식을 거행하며 “원안 사수” 의지를 천명했다.
이날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수정안이 아니라 세종시 폐지안”이라고 성토했다.
이 총재는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행정중심’이란 문패를 떼어내고 과학과 기업도시로 바꿔달겠다는 것이지만 3년 남은 정권이 이 졸속계획을 성공시키리라 믿을 국민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지금은 기업들이 정권에 떠밀려 투자하는 시늉을 하겠지만 죽은 권력이 되면 그 약속을 외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원안에도 카이스트와 고려대 이전이 포함돼 있고 이들 대학은 이미 정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이고 과학벨트유치안도 이 대통령의 충청권 대선공약이었다”며 “정부 수정안은 세종시에서 행정기능을 빼기 위해 원안에 들어 있던 지족기능을 과대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은 이 총재의 기자회견에 이어 국회 본청 계단에서 의원 및 당직자, 당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시 수정안 결사저지 삭발식 및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류근찬 원내대표, 이상민 정책위의장, 김창수 원내수석부대표, 김낙성 사무총장, 임영호 총재비서실장 등 5명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민적 불복종”을 선언하며 삭발했다.
당내 세종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상돈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정부로서 국민에게 지켜야 할 기본 도리를 져버렸다”며 “국가의 장래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정부 수정안에 대해서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은 12일 대전에서 규탄집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또 13일에는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전문가 토론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이완구 전 충남지사, “원안 아니면 갈등 해결 안 될 것”
세종시 원안 수정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한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정부의 수정안에 대해 “본질적 문제해결에는 근처도 가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이 전 지사는 11일 오후 3시 충남도청기자실에서 연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부안은 일단 세종시 자족성 강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며 “그러나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화, 충청의 근본적 발전을 비롯 혁신기업도시 등 타 지역과의 역차별 문제 등에 대한 본질적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지사는 “정부안은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원안이외의 대안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수정안을 고집할 경우)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고 끝없는 논쟁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며 “대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 원형지 개발과 세제혜택 등을 통한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기업을 유치하는 것은 경험상 쉽게 가시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