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이사오기 전까지 남편이 덤프트럭을 운전하며 넉넉진 못해도 우리가족 걱정은 안하고 살았어요. 그땐 어려운 사람들 얘기가 TV에 나오면 같이 눈물도 흘리고 남몰래 도와주기도 했는데 막상 제가 이렇게 되니까 믿기지가 않아요.”
지적장애 2급에 청각장애까지 갖고 있는 딸 정민이(가명·13)를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 최상임씨.
정민이가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처음 안 것은 정민이가 태어난지 13개월 만인 98년이었다.
“엄마아빠 발음이 안돼서 병원에 갔는데 구개파열 진단이 나왔어요. 어린아이가 큰 수술을 받았죠. 대부분 구개열이 파열된 아이는 청각도 않좋은데 그때부터 1년에 한 번꼴로 8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뿐만 아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특수반 6학년과 놀다가 밑으로 깔려버리게 된 정민이는 다리가 골절되면서 성장판까지 다치게 됐고, 불편한 다리는 제작년 추석을 앞둔 9월에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불렀다. 결국 발가락에 철심까지 심어야 하는 큰 수술을 받은 정민이.
턱도 자라고 있어 교정을 해야 하지만 교정구를 착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1500만원 정도가 필요한 수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정민이를 치료해주셨던 원장님이 척추가 많이 휘었다면서 다리보다 척추를 치료해주는 것이 더 급하다고 하시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폐렴이나 귀가 아파서 병원을 다녔으니 척추가 나빠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거죠. 아이가 다리를 절고 다니는 것이 단순히 평발에다 다리의 성장판이 다쳐서 그런 줄만 알았어요.”
진단 결과 정민이는 척추측만증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특히 정민이는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속도가 빨라서 주저앉은 어깨 밑으로 심장과 폐 등 장기들을 누르면서 더 큰 질병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교정이 시급하다.
한달이면 3~4번 오줌을 쌌던 정민이가 요즘에는 수시로 싼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척추측만으로 이미 콩팥이 많이 눌릴 거라고 말했다고.
엎친데 덮친격, 보증 빚에 사기까지…
“내가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으면 아이가 이렇게 고통을 받나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남편과 저는 아픈 아이에게 좋다는 건 다 해주고 싶어서 새벽일도 단 한 번도 늦는 일 없을 정도로 성실히 일했고, 우리 가족 옷한벌 못사입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척추까지 아프다니까 예수님과 부처님이 정말 계신지 원망스럽기까지 했어요.”
그녀가 당시의 심정을 눈물을 훔치며 고백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정민이의 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의 치료 때문에 어렵긴 했지만 남편의 벌이도 괜찮았던 그때가 그나마 행복한 시간이었나 보다.
3년 전 남편은 동생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돼 7000만원의 빚더미에 앉게 됐고, 덤프 트럭 2대와 전세금까지 날리게 된 것. 한 달에 한 번씩 다니는 서울아산병원까지 통원료가 부담스러워 전라도에서 이곳 아산에 조립식 건물을 얻어 살게 된다.
그나마 병원 원장님이 땅을 빌려줘 호박농사를 짓고 첫 해 4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첫해 노하우를 살려 다음해에는 더 많이 지었다. 두 부부가 새벽마다 나가서 땀을 흘린 결과 200만원정도의 수익이 예상됐다.
하지만 호박을 실은 트럭기사가 잠적하면서 호박값은 물론, 두 부부의 노력과 종자 값까지 물거품이 된 것.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 더 힘들어
척추측만증을 치료하는 수술에는 1000만원 이상 들어간다고 한다. 지금 그녀에게는 막막하기만 한 금액이다. 허나 이런 막막함 보다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다.
“밖에 데리고 다니면 정민이를 자꾸 쳐다봐요. 그러면서 엄마는 누구인가 또 보죠. 그런 건 이젠 아무렇지 않지만, 장애아를 가진 집은 모든 걸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막말은 정말 참기 힘들어요.”
둘째 정석이(가명·9)는 공부도 곧 잘하고 태권도 도장을 특히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나마 그녀에게 힘을 주는 활력소다.
“예전에 도장 운동회에 갔다 누나가 오줌을 싸는 바람에 창피하다며 울고 불고 난리가 난 적이 있어요. 상처를 많이 받았었죠. 그런데도 누나 괴롭히는 사람 혼내준다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장에 열심히 다녀요. 그런 걸 보면 기쁘면서도 슬퍼요.”
누나를 생각하는 기특한 동생을 보면 힘이 생긴다는 그녀, 하지만 그만큼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섞인 미소로 하루를 이겨내고 있다.
안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