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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온천역 하부공간이 야간에 취객들과 청소년의 비행장소로 둔갑해 사고의 위험이 지적되고 있다. |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아산시의 야심찬 계획 하에 공사가 진행중인 온양온천역 하부공간이 낮에는 노숙자들의 쉼터로, 밤에는 취객들과 청소년들의 우범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온양온천역 하부공간은 자전거도로와 인도공사를 마무리 하고 역광장 분수대, 체육시설 등의 공사를 진행중이다.
하지만 철도가 고가화 되면서 역사 좌측의 주차장 사이의 공간은 대낮에도 깜깜할 정도로 구석지고 공사자재와 컨테이너로 가려져 낮에는 노숙자들이 화투를 치거나 잠자리로 사용하고 밤에는 학생들이 흡연을 하거나 싸움이 벌어지는 등 탈선의 현장으로 돌변한다.
역사 주변에는 주차단속 CCTV 4대가 설치돼 있지만 교차로 지점에 설치돼 있고 동서간 거리가 멀어 역 하부공간에서는 그야말로 누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달 11일 새벽 4시경 술에 취한 40대 부녀자가 그 자리로 끌려가 성폭행 당하고 현금을 빼앗기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가 지면 학생들이 무리지어 흡연과 욕설을 일삼는 등 운동을 하기 위해 길을 지나던 시민들에게 위협감을 주고 있다. 게다가 어린 여학생에게 용돈을 주며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행위나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는 취객 등 각종 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이에 아산시는 현재 진행중인 공사가 오는 12월 계획대로 마무리 되면 이후의 치안수요를 보고 CCTV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근 상인과 주민들, 시민단체는 그 때까지라도 용화동 방면의 거리에 조명을 설치해 밝게 하고, 범죄의 위험을 차단할 수 있는 치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역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청소년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밤만 되면 범죄영화 배경으로 변하는 역 하부공간
노숙자, 취객, 학생들 뒤섞여 사고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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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 역하부공간을 배회하는 청소년들. |
거리가 어두워진 밤 9시경 온양온천역 뒤편 용화동 방면의 도로 앞에서 입에 담기 민망한 육두문자가 오가고 있다. 가까이 보니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 4~5명이 몰려 있다. 술에 취한 40대 여성이 한 학생을 향해 욕설을 퍼붇고 있고 다른 학생은 이 취객을 말리고 있다.
지난 10월6일 본 기자가 온양온천역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장면이다. 마치 범죄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이시간대에 이런 광경은 흔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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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동 방면의 역 남쪽 측면. 도로가 상가와 붙어 있고 조명이 어두워 마치 범죄영화의 배경을 보는 듯 하다. |
담배 펴도 뭐라 안해…술먹자 돈주기도
온양온천역을 중심으로 이어진 자전거도로를 코스로 운동을 다니는 정모씨(38·온천동 H아파트)는 추석을 1주일 앞둔 어느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 5~6명이 몰려 앉아서 흡연을 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학생들에게 꾸지람을 줬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평소 해병대 전우회에서 활동하는 등 의협심이 강한 편이었던 정씨는 당시에 대해 “대부분 학생은 담배 끄라는 말에 끄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선배로 보이는 몇 명은 귀찮다는 듯이 대꾸도 안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심한 말로 나무라며 차라리 안보이게 피라고 했더니 그냥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정말 화를 참느라 혼났다”며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너무한 것 같다. 요즘은 날이 더 빨리 어두워져서 학생들의 비행이 더 일찍 시작된다. 역은 아산시의 얼굴과 같은 곳인데 이런 광경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기자가 만나본 교복차림의 학생들은 놀랍게도 서로를 알고 있었다. 학교는 달랐지만 이른바 시내권 학교에서 ‘일진’이라고 불리는 ‘잘나가는’ 학생들의 아지트라는 것.
무리지어 담배를 피던 학생들을 만나보았다. ‘ㅇ'중학교 3학년이라는 남학생은 “학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바람쐬는 중이예요. 집에 이 시간에 가야 아무도 없고 그냥 가는 길에 친구들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러다 집에 가요. 담배도 꼭 숨어서 피지 않아도 어른들이 보고도 뭐라고 안하니까 그냥 펴요. 숨어서 피는 건 귀찮으니까요.”
옆에 있는 시내 ‘ㅇ’중학교 1학년이라는 여학생은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줬다.
“이 시간에는 주로 중학생들이 와요. 고등학생들은 좀 일찍 왔다가 시내에서 노래방, PC방에서 놀거든요. 우린 돈이 없어서 못 놀아요. 대신 여기에 있으면 돈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지난번에는 어떤 아저씨가 5만원짜리를 주면서 자기랑 노래방을 같이 가자는 거예요. 자기는 술만 마시겠다며 2~3번 연락도 왔었는데 무서워서 연락 끊었어요.”
마치 TV고발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던 풍경이 온양온천역 하부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던 것. 더군다나 이 학생은 마치 무용담을 자랑하듯 이야기 했고, 옆 친구는 자기는 더 많이도 받아봤다며 맞장구 쳐준다.
이 학생들과 인터뷰 하는 도중에도 취객들과 서성이던 학생들이 시비가 붙어 본 기자가 나서서 말려야 하는 상황이 2건이나 발생했다. 그만큼 이곳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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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과 역사 사이에 있는 컨테이너 뒷 공간. 노숙자들이 화투를 친 자리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
“애들 탓할 것 없다.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지…”
역사 바로 길건너에서 식당을 하는 한 시민은 이곳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지적했다.
“사실 요즘 학생들이 문제 많다고 하는데 애들 나무랄 때가 아니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지. 허구헌날 술먹고 시비걸고 욕하고 아무데서나 자고…이런 사람들만 눈에 띄니 학생들이 어르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냐. 애들도 술취한 어른이 뭐라고 하면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놀리면서 재미있어 한다”며 “시장도 들어오고 공사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조명을 설치해주던지 해야 할 것 같다. 이 거리에 식당들이 문을 닫으면 정말 깜깜하다. 또 도로와 가게가 바로 붙어 있어서 교통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만에 하나 취한 사람이 취기에 학생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사고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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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낮에도 주차장 안쪽은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 |
아산시, 역사하부 CCTV계획 없어…경찰, 그정도인줄 몰랐다
상황이 이렇지만 경찰서와 시청 등 담당기관에서는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현재 아산시는 방범CCTV 143대가 설치돼 있으며 10대를 올해 안에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이중 주택가와 통행로 위주로 설치된 생활방범용 CCTV는 57대, 초등학교 주변 66대, 도로범죄차량 검거용 번호인식CCTV 28대 등이며 온양여중·고에 6대가 설치돼 있다.
이중 온양온천역에 설치된 방범 CCTV는 전면에 설치된 1대뿐이지만 그나마 분수대 공사로 철수시킨 상태로 공사가 마무리 되면 재설치 할 계획이다.
아산시 관계자는 “CCTV는 지속적으로 증설하는 추세이지만 아직 역사 부근에는 설치계획이 없다. 구간이 중복되지 않게 설치하려다 보니 온천초등학교에서 현대홈타운 가는 길에 설치할 계획”이라며 “CCTV설치는 예산적인 측면도 고려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해야 한다. 농촌에서도 수확철 절도사건 때문에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고심중이다. 역 부근에는 주정차용 CCTV도 있고, 공사가 마무리된 후 치안 수요를 분석해서 설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아산경찰서 관계자 역시 “시내지역이기 때문에 주취신고가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학생들의 비행이 그 정도로 심각한지는 몰랐다”라며 “관할지구대에 통보해서 치안활동을 더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공사기간중이라도 치안대책 마련해야…청소년 문화공간도 필요해
아산시에 따르면 현재 온양고~팔래스호텔~온양온천역~송악사거리까지 자전거도로, 경관분수, 워터미러, 바닥분수, 게이트볼장, 배드민턴장 등의 시설을 공사중이며 재래시장의 이주 등 오는 12월까지 공사를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나 청소년 전문가들은 공사가 완료되기 전 까지 치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역전 자율방범대 관계자는 “역 하부공간은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아산시에 밝게 해달라고 건의도 했고 방범대 차원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역하부공간에서 돈을 뺏으려고 끌고 가는 현장을 덥치기도 했고 노숙자들을 놀리고 담배를 달라고 해서 노숙자들이 찾아오기도 했다”며 “아예 출입을 막던지, 출입을 할 것이라면 조명을 밝게 하던지 CCTV라도 설치해서 방지해야 할 것 같다”고 제시했다.
아산 YMCA 박진용 총무는 갈 곳 없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학생들의 비행과 취객들과의 시비가 잦다면, 사고는 몇분만이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사가 끝날 때 까지라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청소년 문화가 정착된다고 비행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아산에 청소년 문화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큰 시설이라기 보다는 청소년들의 생활권역 요소요소에 작더라도 청소년 전용 북카페, 동아리활동공간, PC방 등의 시설과 프로그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산시청소년지원센터 김경숙 소장은 아산시가 설립하고 있는 청소년수련관의 운영에 기대를 걸었다.
“시설 크기보다는 곳곳에서 접하기 쉬운 장소에 공간이 마련돼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청소년수련관을 어떻게 운영하냐와 활성화 시키는 것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접근성과 관주도의 운영 등 청소년 수련관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찾는 곳이 돼야 한다. 특히 시설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어른을 멘토로 붙여주는 제도를 시민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활성화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