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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충청남도 교육감 |
추석이 다가오는 고향마을엔 정겨운 향기가 있다.
밤나무엔 가시조차 탐스런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우물가 감나무엔 붉은 감들이 수줍은 듯 감잎에 반쯤은 가려 있다.
가을 하늘이 공활한 것처럼 하늘은 높고 푸르다. 흐르는 물도 맑고 공기도 깨끗하다. 들판도 황금빛 물결이다. 멍석에 널려 있는 붉은 고추는 겨울 김장을 기다리는 듯하다. 뒷산에 깔끔하게 벌초된 무덤은 망자들의 추석을 기다리는 모습처럼 산뜻하다.
옛 모습을 담은 추석에는 새롭게 느껴지는 가르침이 있다. 추석이 깨우는 가르침이다.
하나는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은혜다. 부모에 효도하고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다. 맹자는 “사람마다 어버이를 친애하고 어른을 공경하면 천하가 화평하다.”고 말했다. 조상이 존재하기에 부모가 계시고 부모가 계시기에 내가 존재한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글에는 고향을 찾아가는 후손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차례를 올리며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둘째는 고향에 대한 뿌리의식이다. 추석 무렵의 고향집과 고향마을은 모처럼 바쁘다. 산에서 솔잎을 따다가 송편을 빚기도 한다. 누렇게 익은 호박을 따다가 떡을 만들기도 한다. 송편을 빚으며 나누는 대화 속에는 정겨움이 있고 사랑이 있다. 고향 어귀에는 귀향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물론 냇가 근처는 옛날과 다르다. 녹색환경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고향이 늘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고 정감이 가득하길 바란다. 고향에 묻혀 살거나 출향하였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애향심을 더욱 키웠으면 한다.
셋째는 고향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애정이다. 추석에는 반가운 친구들도 만난다. 외지에서 돌아온 친구들은 옛 모습을 훌쩍 벗고 늠름하고 의젓하며 어려운 경제사정과는 달리 생동감이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마을대항 체육대회가 열린다. 한가위 보름달 아래서는 옛 추억을 더듬는 목소리가 아련하고 주변 음식점엔 학교 동창 계모임이 한창이다. 여기저기서 정치 이야기도 하고 경제 토론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교육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모두가 교육전문가가 된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교육정책도 나온다. 지역공동체의 유대가 긴밀하고 화합의 한마당이 되었으면 한다. 나 스스로 마음을 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작은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 더 보탠다면, 소외된 이웃을 찾는 마음을 지녔으면 한다. 양로원이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면 자녀들에게 가장 큰 교육이 되고 뿌듯함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이 뿌듯함이란 무엇보다도 큰 추석선물이다. 자기 집 명절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는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배려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헌신과 봉사가 몸에 배어 있다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물질로 전할 수도 있고, 노력으로 대신할 수도 있으며, 손을 맞잡고 따뜻하게 나누는 인사와 경청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마음과 능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며, 행복 중에서도 가장 크고 귀한 행복이다.
올해는 추석명절이 개천절과 같은 날이다. 혹자는 공휴일이 적어 아쉬움을 지닐 수도 있으나 얼마나 값진 추석을 보내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부모님과 조상의 은혜를 생각하고, 진득한 애향심을 지니며, 지역공동체 구성원과 함께하는 마음을 지닌다면 추석을 보람 있게 보내는 일이 될 것이다.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錦上添花)이고. 이 네 가지가 늘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추석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일깨우는 가르침이다.
신종플루 염려가 있지만, 민족 대이동으로 도로마다 자동차로 넘쳐날 것이다. 지체와 정체도 심하리라. 그래도 대전에서 당진으로 고속도로가 열렸고, 공주와 서천간 고속도로도 개통되어 덜할 것이다. 추석명절을 보내며 시름을 잊고 훤하게 뚫린 길만큼 모두의 앞날이 탄탄대로처럼 펼쳐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