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53)유평보 부부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20여 년간 투병해오던 아들을 보내야 했던 지난 2004년을요. 그 전에도 그 이후로도 집안에는 우환이 끊일 날이 없었어요. 결국 쌓여오던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장애까지 판정까지 받았죠. 이제 남은 하나뿐인 딸에게마저 이런 아픔들이 대물림되지는 않을까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에요. 그게 가장 두려워요.”
사연을 전하다 끝내 눈가를 적시고 마는 김영순 씨. 김씨의 아들이 앓던 병은 바로 ‘근이영양증’이었다.
‘근디스트로피’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오래전에 발견됐지만 발병 원인이 밝혀진 것조차 그리 오래되지 않은 희귀난치병이다. 치료약도 아직 없는 상태고, 단지 근육의 약화 정도를 늦출 수는 있는 물리 및 재활치료가 전부라고 한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을 유지하는 단백질이 결핍돼 근육세포가 점차 퇴화되고 힘이 없어지면서 팔, 다리 등에 마비증상이 오기 시작한다. 이런 증상이 진행되고 점차 몸 위로 올라와 말기가 되면 호흡부전이나 심부전 등의 합병증을 동반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심장도 근육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아들도 그렇게 22살의 나이로 심장마비에 걸려 영면에 들고 말았다.
응급실은 안방, 응급차는 자가용
가족의 원래 연고는 경기도 안양이었다. 반지하방에서 살던 이들 네 가족은 아들 유씨의 병세가 악화되자 1200만원의 전세금을 빼내 공기 좋고 쾌적한 풍세로 이사를 왔다가 얼마 후 지금 사는 아산 배방의 한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당시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그나마 전세금 중 400만원을 떼이고 말았다고. 나중에 주택공사가 매입해 장기임대로 20년간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들의 투병이 길었던 탓인지 남편 유씨는 술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또 당뇨를 장기간 앓다보니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병과 씨름하고 있는 형편. 김씨의 말을 빌자면 ‘응급실은 우리집 안방, 응급차는 우리집 자가용’이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유씨는 지금 만성신부전증으로 이미 신장의 기능이 상실되어 주 3회 혈액투석을 받고 있고(신장장애 2급), 뇌내출혈, 식도역류, 만성췌장염 등을 갖고 있다. 작년에는 저혈당 쇼크로 넘어져 골절상을 입었고 올초에도 무릎을 다쳐 겨우 아파트 주변을 산책할 정도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매 끼니마다 10여 알의 알약을 먹어야 한다.
아내 김영순씨도 건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37살 당시 난소암 직전에 자궁과 난소의 적출수술을 받은 이후, 골다공증이 급속히 진행됐다. 요즘은 치아마저 좋지 않은 상태로 음식을 제대로 씹기가 힘든 형편이다. 병원에서는 치료를 위해 엉덩이살을 잇몸에 이식해야 할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얼마 전에는 목디스크인지 중풍인지 정확한 진단을 위해 MRI를 찍어보라는 권유까지 받았다.
주위를 둘러싼 환경과 불운탓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김씨에게 이제 남은 삶의 이유는 하나뿐인 딸 뿐이다.
행복한 딸 보고 싶어
현재 근로능력이 없는 이 가정의 수입은 정부에서 지원되는 80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것처럼, 병원을 자주 다니다보니 생활은 늘 쪼들리기 마련.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의료비 부담은 적지만 검사비나 입원실 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런 현실의 개선보다 김씨가 더 바라는 것은 그저 딸이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을 보는 일이라고.
“그저 건강하고 좋은 사람만나 시집가는 거 보는 게 소원이죠. 집에서 겪은 슬픔들 다 이겨내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죽기 전에 꼭 보았으면 해요.”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