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은 방학 단축해 보충수업
전문계고 학생조차 방학중 국영수 보충수업 강요
도교육청의 학력신장노력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9일, 백석초에서 열린 ‘학력증진을 위한 의견 수렴회’에 참석한 김종성 도교육감.
전국 최하위 학력의 오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충남도 교육청의 노력이 눈물겹다.
김종성 도교육감 취임이후 충남도교육청은 최근 학력증진과 관련한 일련의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교육감은 지난 6월부터 도내 일선 교육현장을 돌며 ‘학력증진을 위한 교육공동체 의견수렴회’를 가졌다. 또 자사고, 자율고 등을 추진해 우수 학생의 전국단위 모집을 가능케 하는데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교육청이 학생들의 학력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 학부모들의 관심과 호응도 꽤 있는 편이다.
충남교육청은 오는 9월1일자로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할 계획이다. 이번 조직개편은 1999년 1월이후 10여 년만이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학력증진지원과 신설. 초·중등 분야의 학력신장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기능을 맡게 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제고사와 수능시험의 성적공개 이후 도교육청이 무리한 학력경쟁에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학교와 학원간 차이가 없어진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지난 4월30일 2단계 학교자율화 조치와 신임교육감 취임이후 초등교육과정 파행운영 실태를 표본조사했다. 대상학교에 설문지를 보내 해당학교 전교조 분회장이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65개의 초등학교가 응답을 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응답학교 대부분의 교사들은, 최근 들어 문제풀이식 수업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방해를 받고 있으며 학력신장을 목표로 하는 학력제일주의로 교사는 물론,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일제고사로 인해 시험이 늘면서 교육과정을 시험에 맞춰 운영하게 돼 학교와 학원간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는 대답이 많았다고.
전교조는 일제고사와 수능성적 공개이후 단위학교에서의 성적경쟁이 강화돼 시험만을 위한 비교육적 행위들도 증가하고 있다며, 정규수업이 시험날짜에 맞춰 학사일정 조정이 이뤄지고, 예체능 교과가 축소되며, 학력향상을 위하 교장의 무리한 학교운영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학업성취도 높이려 서약서 까지?
서약서.
본인은 여름방학동안 실시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특히 금번 프로그램은 우리학교가 학력향상 중점학교로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무상으로 실시되느니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으로 불참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참여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실시되느니 만큼 만일 여름방학동안 방과후 학교에 무단으로 불참을 할 경우엔 본인으로 인해 앞으로도 국가로부터 지원받아야할 조건을 간접적으로 위반하는 경우가 되므로 향후 학교로부터의 각종혜택에서 제외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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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최근 모 고등학교에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앞두고 학생들로부터 받은 ‘서약서’다.
‘굳게 다짐합니다.’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등 마치 악덕 대출업체에서 돈을 빌릴 때 쓰는 각서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게 현실이다.
지역별 순위가 공개되는 일제고사 대비수업은 전문계 고등학교에서도 나타난다.
충남교육청은 전문계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중 일제고사대비 국, 영, 수 보충수업을 지시하고 그 실행여부를 감독하겠다는 공문을 일선학교에 시달했다.
전교조 충남지부(지부장 윤갑상)는 도교육청의 이런 행보에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지난 15일에는 ‘성적지상주의 경쟁교육,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도교육청의 무리수를 비판했다.
이들은 ‘충남교육청과 교육당국이 의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학력신장인지 아니면 시험점수 향상을 통한 교육청 실적올리기인지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말로는 학생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이는 학생들을 관료들의 실적쌓기에 이용하는 것이다. 더이상 학생들을 자신들 놀음판의 들러리로 세우지 말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원성동에 사는 학부모 오모씨(42)는 “학생들이 학력신장 노력의 수혜자인지, 피해자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학력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학생의 본분이자 교육청 본연의 업무다. 하지만 교과과정 이외의 시험이 늘어나고 그 결과들이 세세하게 공개되면서 학업성적이 곧 교육의 유일한 목적인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