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수술받기 전까지 2주 이상 쉬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지금껏 여러가지 일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생활은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 ‘바닥생활’을 벗어나고 말거에요. 저 스스로 뿌리부터 변하고 있으니까요.”
모자가정. 흔히 말하는 ‘싱글맘’인 이행찬 씨.
이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 미란이(11·가명)와 단 둘이 삶을 꾸려가고 있다.
가정의 해체를 겪고,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녀는 사무직 회사원, 간호사, 화장품 외판원을 하며 저녁에는 밤 늦게까지 식당일을 하기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모든 싱글맘이 그렇듯, 온전히 일만 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씨의 형편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치매를 앓던 외할머니를 모셨었고, 집에 누가 아프거나 일이 생기면 불가피 하게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친정 부모님이 계시지 않던 탓에 아기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고, 짧은 주기의 입사와 퇴사를 이어가며 늘 불안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미란이가 갓난아기 였을 때부터 아기를 업고, 화장품 가방 들고 팔러 다녔는데, 힘든 날은 화장실에서 울기도 하고…. 애도 울고 나도 울고… 했었어요. 그래도 계속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만은 참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2007년 산모도우미를 할 때 쯤에는, 딸 미란이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아 조울증에 성조숙증까지 나타났었다. 엄마와 떨어져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긴 탓인 듯 했다.
그러던 중 작년에는, 이미 받았던 대출 때문에 재산압류가 들어왔고, 개인파산을 신청한 상태에서 자궁근종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아파트 관리비가 눈덩이처럼 밀려가는 상황, 이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간신히 6개월 시한의 조건부 기초수급지원대상자가 됐다. 하지만 어느덧 그 만료기간이 다음 달이다.
“어렵다고 꿈꾸지 말란 법 있나요?”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으면서, 이행찬씨는 딸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미란이가 커가면서 ‘엄마, 수급자가 뭐야? 모자가정이 뭐야’하며 묻는 말에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현재의 생활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본인도 모를 각오와 의지가 솟구쳤다.
이씨는 지난 3월,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에 등록하고 드디어 새로운 목표를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사회복지와 관련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예전에 우연히 접했던 연극에도 직접 참여해 공연까지 해냈다. 행찬씨는 현재 연극패 ‘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의 총무를 맡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연극패의 창단공연 ‘아름다운 死因’도 멋지게 마무리 지었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미란이의 성격도 많이 변하고 건강해졌다. 예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성격이 돼, 이제는 ‘개그맨’이 꿈일 됐을 정도다.
수술이후 체력은 많이 떨어지고 두통에 어지러움증까지 생겼지만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 이씨는 무엇이든 해낼 각오다.
육체적으로는 좀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말하는 이씨.
“엄마가 웃어야 아이가 웃는다고 믿어요. 쉽지 않은 삶이지만 딸 미란이와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한다.
이씨의 당찬 모습에서는 힘겨움도, 두려움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