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북일고등학교가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하면서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북일고등학교가 지난 8일(월) 충남도교육청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신청서를 내면서 지역교육계에 찬반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2010년까지 전국 30개의 자사고 설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현 정부 시책에 따라 충남도교육청은 지난달 20일(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05조의3’의 규정에 의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운영계획을 공고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충남도교육청은 ▷8일까지 접수한 학교의 신청서를 토대로 ▷6월15(월)까지 교육과학기술부와 사전협의하고 ▷6월26(금)까지 자사고 지정·운영위원회 심의하며 ▷6월30(화) 결과를 토대로 자사고를 지정·고시할 예정이다.
충남에서는 북일고등학교가 유일하게 자사고 신청서를 접수한 상황. 교육당국의 기조와 학교의 바람이 맞아 떨어지는 만큼 자사고 지정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분위기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참교육학부모회 천안지회’와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천안학부모회’는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박갑주·황임란)’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반대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9일 북일고를 방문해 우려와 항의의 뜻을 전하고 곧바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충남지역의 90여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충남희망교육실천연대도 지난 9일 ‘충남도교육청은 교육불평등 조장하는 천안북일고 자사고 신청허가를 반려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도교육청을 압박했다.
전교조 충남지부도 오는 23일경 ‘학부모 초청 자사고 실태 등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이달 중순께부터 천안시내 백화점이나 터미널 등지에서 ‘자사고 반대 거리 선전전’을 펼칠 예정이다.
교육의 다양성 인정인가, 교육 불평등 조장인가
천안지역 중3학부모들 노심초사, 최악의 고입대란 우려도
천안지역학부모단체들은 지난 9일 북일고를 찾아 신현주 교장을 면담하고 학부모들의 우려를 전했다.
한편, 북일고가 충남도 교육청에 제출한 자율형 사립고 신청서에는 ▷2인 1실의 기숙사 건립 ▷전국단위 50%, 광역단위 50%의 비율의 학생선발 ▷학생선발과 입학전형에 학교장의 자율권 부여(국제과 1학급 남녀 30명과 야구부 특기생 12명 별도 특별전형. 한화그룹 임직원 자녀 8~10% 별도전형 허용) ▷일반고 대비 학생 공납금 3배 이상 징수허용(자립형 사립고 수준) ▷2012년 북일여자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 전환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학부모단체와 면담에 나선 북일고등학교 신현주 교장은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인재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사교육비 높아진다 vs 어쩔수 없는 병리현상
지난 8일 오후3시. 참교육학부모회 김영숙 충남지부장과 박갑주 천안지회장, 평등교육실현을위한천안학부모회 황임란 대표와 윤호숙 집행위원장, 전교조충남지부 이영주 사무국장의 5명은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북일고등학교의 신현주 교장을 만나 우려와 항의의 입장을 밝혔다.
대화초반 공문의 형식 때문에 다소 껄끄러웠던 분위기는 본 문제가 화두가 되자 이내 잦아들었다.
박갑주 지회장은 “천안은 비평준화 지역으로 이미 사교육 열기가 높은 지역이다. 이번 자사고 신청으로 아이들이 받아야 할 학습부담과 부모들이 져야 할 사교육비 부담이 우려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30여 년간 나름대로 지역사회에 공헌해 온 북일고가 내린 이번 결정은 교육의 공공성을 떠나 학교의 이름을 높이려는 이기적인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현주 교장은 “사교육은 학원의 불안감 조성과 부모의 욕심으로 인해 빚어지는 일종의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어떤 정책이 나와도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자사고 전환이 사교육비의 증가의 근본이유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교장은 특히 이번에 신청한 자율형사립고는 경시대회 성적이나 지필형 선발고사 결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도교육청과 사전협의한 입학사정관제, 내신, 학교장추천, 추첨을 통해 진행될 예정으로 지금 북일고도 선발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부자들만의 학교 vs 저소득층 배려 충분
자사고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북일고등학교 신현주 교장.
현재 전국에는 민족사관고, 부산 해운대고 등 모두 6개의 자립형사립고가 있다. 이들 학교에 학생들이 납입하는 학비는 최고 3000만원에서 적게도 12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임란 회장은 이와 관련해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교육불평등의 우려를 내놨다.
황 회장은 “현재 운영중인 6개 자립형 사립고의 경우 학비부담이 보통의 가정에서 감당할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다. 경제력에 의해 원하는 교육을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교장은 “2010학년도부터 도입될 자율형 사립고는 저소득층(차상위계층+기초수급대상자) 학생들에게 20%의 할당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수치에 미달할 경우 일반 학생들의 대체 선발도 금지돼 있어 기존보다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위한 상당한 배려를 했다고 본다.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학교라는 입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영주 사무국장도 학비와 재단전입금을 문제삼았다.
이 사무국장은 “현재도 수업료와 기성회비만 연 13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안다. 북일고도 이미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면서 3배의 공납금을 징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수익자 부담이라는 명목으로 기숙사비, 급식비, 방과후학교 운영비를 더하고 기숙시설준비, 기존 건물 개·보수 등 운영비까지 고려한다면 학부모들의 부담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장은 “지금보다 3배정도 더 걷게 될 공납금은 오로지 교직원의 임금이며 나머지 시설 투자는 재단측에서 할 것이다. 또 자사고로 지정되면 재단의 시설투자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북일재단은 학교운영으로 돈을 벌어 보자는 차원이 아니다”라며 에둘러 이해를 구했다.
고입대란 부채질 vs 글로벌 인재 양성
도 교육청의 일정대로 자립형사립고가 지정, 고시되면 당장 올해 중3학생들의 수급조건도 바뀌게 된다. 안 그래도 해마다 ‘고입대란’이 일어나는 천안일반계고 입시를 놓고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북일고는 학생선발을 전국단위 선발비율과 지역단위 선발비율은 지정 이후 교과부와 협의할 사항이지만 현재 전국선발대 지역(충남)선발을 50대 50의 비율로 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신현주 교장은 “당초 계획은 10학급 30명 정원으로 자사고를 신청하려했으나 도교육청에서 학급을 줄이지는 말라는 요청이 있었고 또한 재단측에서도 천안지역의 상황을 고려할 것을 주문해 12학급 35명으로 신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교장은 2013년이 되면 학급수와 학생수를 조절할 예정이라는 단서도 덧붙였다. 그는 “이제 대학을 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고 어떤 인재를 키우느냐가 중요하다. 북일고등학교는 진정한 리더를 키워보자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천안 학부모들이 생각할 때는 사실상 일반계고 모집에서 1개 학교가 사라지는 상황이어서 고입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중3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 서모씨(42·쌍용3동)는 “전년도에 375명을 뽑았던 북일고가 전국모집과 광역모집에 나서면 천안의 일반계고 진학 희망 학생들이 그만큼 피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지역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작년에는 아산설화고가 천안지역 일반계고 수요에 대한 완충역할을 하면서 미달사태까지 났었지만 2010학년도 고입은 그런 기대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자율형 사립고가 일정대로 추진되고, 중3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학희망학교 조사가 이뤄지면 서씨와 같은 우려가 고조되면서 갈등은 더 심해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자율형사립고? 자립형사립고?
자율형사립고와 자립형사립고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교직원 인건비 및 학교·교육과정 운영비를 지급받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 대신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 교원인사, 학사관리 등을 학교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현재의 자립형사립고는 운영자체가 시범운영의 형태로 2010년 2월이면 모두 종료되며 기존 자립형사립고는 희망에 따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할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두 학교의 차이점은 ▷학교 지정권자의 경우 자율형 사립고가 시·도 교육감인 반면 자립형사립고는 교과부 장관이라는 점 ▷학생선발에 있어 자율형 사립고는 시·도별지역제한을 둘 예정인데 반해 자립형사립고는 전국 단위 선발이라는 점 등이다.
현재 충남도교육청이 밝히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의 지정요건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교직원 인건비 및 학교·교육과정 운영비를 지급받지 않을 것 ▷학교법인은 매년 학생으로부터 받은 수업료 및 입학금 총액의 3% 이상을 해당학교의 법인전입금으로 전출할 것 ▷또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중 교과 이수단위의 50% 이상을 충족할 것의 세 가지다.
도 교육청은 우선 법령에서 정한 지정요건 및 교육감이 정한 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학교, 재정이 건실하며 건학이념 및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학교를 우선 지정하고 학생 수용계획을 반영해 지정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또 입학정원의 20% 이상은 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국가보훈대상자 자녀 등 사회적배려대상자를 선발해야 한다는 규정, 수업료 및 입학금은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학부모 부담이 가중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할 수 있다는 규정도 명시돼 있다.
아울러 지정기간은 매 5년 단위로 하되, 교육감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5년 단위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운영계획도 나와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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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교장은 “이미 충분한 설명을 하고 들었다”며 학부모들이 준비한 항의서한은 끝내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