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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6동을 대표하는 온주아문의 관리상태가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온주아문 2충 목조구조물이 칠이 벗져지고 골격이 어긋나 있다. |
아산시의 대표적인 문화재이자 과거 온양현의 중심지였던 온양6동의 역사를 나타내는 온주아문에 대한 관리소홀이 지적되고 있다.
온양6동에 거주하는 이순남(78)씨는 온주아문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지만 관리소홀로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4월 초에 온주아문을 방문했을 때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온주아문 안에 동헌은 문창살 사이로 문풍지가 다 찢겨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에 시에다 민원을 제기해 제초작업과 창호지는 교체했지만 뽀얗게 쌓인 먼지를 비롯해 곳곳이 벗겨진 페인트와 몇몇 파손된 흔적은 그대로 있어 외관상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면서 “보다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한데도 시에서는 눈가우리 아웅식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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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 내 동헌 마루터 나무골격이 비어 있어 이가 빠진 듯 하다. |
실제 현장을 확인한 결과 온주아문의 상단부분 난간의 목조골격이 손상된데다 표면의 칠도 벗겨져 방치된 상태였다.
온주아문 뿐 아니라 안에 위치한 동헌 건물 좌측 복도에도 이가 빠진 것처럼 목판이 비어 있으며 청소가 이뤄지지 않아 쌓인 먼지와 문풍지 사이의 거미줄이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있다.
인근 당간지주도 돌계단도 파손된채 방치돼 있고 인근 폐공사 기물 등 적치물이 널려 있어 문화재로서 위상이 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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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 인근 당간지주 안의 돌계단도 파손된채 방치돼 있다. |
이에 아산시 관계자는 “지적한 부분에 대한 문제점은 이미 파악하고 있지만 관련 예산을 충남도에서 승인하지 않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초작업 등 간단한 작업은 시예산으로 집행이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 문화재를 보수하려면 충남도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충남도에서 인정을 안해 예산이 승인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급한대로 시예산으로라도 추경에 편성해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온주아문 및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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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 |
아산시읍내동 159에 위치한 온주아문과 동헌은 1973년 12월24일 유명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됐으며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이었던 문 위에 누각을 만든 문루건물과 동헌이다.
아문은 1871년 고종 8년에 고쳐지어진 건물이고, 동헌은 여러차례 변형됐으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건물로 기초석 위로 1.5m의 주춧돌을 배열하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했으며, 정면의 ‘온주아문’이라는 현판은 663년(신라문무왕 3년)에 이곳을 온주라고 한데서 유래한 듯하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길게 다듬은 받침돌을 한 벌 쌓아 기단을 마련하고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두고 그 위에 네모난 기둥을 세운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조선시대 온양현의 동헌으로 쓰였다가 일제의 주재소, 해방후에는 파출소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온양시 온주 동사무소로 사용됐다. 1993년 수리·복원됐다.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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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 |
1971년 7월7일 보물 제537호로 지정됐으며 아산시 읍내동 255-2번지에 위치해 있다.
당간지주는 당을 다는 깃대인 당간(幢竿)을 지탱하기 위해 돌로 만든 기둥이다. 당간은 사찰의 앞에 세우는 깃대로 절에는 기도나 범회가 있을 때 부처의 공적과 덕행을 표시하고 마귀를 내쫓는 의미를 띤 당(깃발 혹은 막)을 달기 위한 것이다.
높이 410㎝, 너비 55㎝, 두께 39㎝로 2개의 돌기둥이 한 쌍을 이룬다. 별다른 장식 없이 바깥쪽 모서리 부분을 둥굴게 깎은 직사각형 모양이고, 당간지주 윗 부분에는 당간을 고정시키는 직사각형의 구멍이 파져 있다.
당간지주가 서있는 곳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은 절 내의 연지로 짐작되고 또 주위에서 각종 기와 조각과 석탑의 일부분 등이 발견되어 절터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위의 유물과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