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남매를 어떻게 키웠냐고? 그 고생을 어떻게 다 말로 해. 1박2일동안 해도 다 못햐.”
지난 8일 어버이날에 ‘장한 어버이’로 선정된 노인분 할머니는 한바탕 호쾌한 웃음으로 기자의 질문을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9남매 중 7번째 며느리로 시집가서 큰 딸을 낳자마자 남편이 6·25에 참전해 다리 한쪽이 불구가 돼 돌아오게 됐다. 당시 노인분 할머니 나이가 22살이었으니 꽃다운 나이를 격장의 세월속에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 때는 너무 어려웠어. 애들 학교 보내면서 밥도 못해먹였지. 아산만을 막을 때 가래질하면 하루에 밀가루 1포씩 줬어. 그것으로 장국해 먹이고 그렇게 살았지. 애들 키우면서 속상할 때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떼어놓고 나갈 수 있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세월. 그 세월은 어느덧 손주들이 새색시 시절 할머니의 나이로 자랄만큼 훌쩍 지나버렸다.
“애들 아빠가 다리 다쳐서 나왔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네. 몸이 불편하니까 일을 할 수 있어야지. 애들 아빠가 다리가 불편해 농사를 짓지 못하니까 이런저런 장사도 하고, 안해본게 없었지. 말하면 뭐해.”
노인분 할머니는 10년 전에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이제는 영인면 백석포 2리에서 할머니 경로당 회장을 맡으면서 마을에서 봉사하고 있다. 눈이 오면 눈을 쓸고 경로당 문단속에 에너지 절약까지, 가장 열심히 경로당 관리에 힘쓴다고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다.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도 낮에 들에도 몇 번씩 나가고 경로당도 돌아다니고.. 남들은 내가 너무 돌아다녀서 건강하다고 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건강의 비결이 마을 구석구석 살피는 발걸음이라고 말하는 노인분 할머니.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노인회 지원을 당부했다.
“노인네들이 무슨 돈이 있어? 수도세 전기세 같은 것은 무료로 해줘야지. 기름값이 부족하니까 여기서 씻지도 못하게 한다니까. 그리고 여름엔 너무 더워. 뭐시기냐 에어콘 하나만 놔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