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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근(50·천안시 쌍용동·선문대학교 교류협력팀장) |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급격히 보편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취미생활로 즐기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사진이란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날이면 사진을 찍었고, 시간이 흐른 뒤에 빛바랜 사진을 보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중학교 시절 부모님께서 카메라를 사주신 이후로 지금까지 30년 넘게 사진을 취미로 삼고 있다는 노상근(50)씨의 집에 들어서자 거실 벽에 걸린 액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외 명소에서 찍은 풍경사진도 있었고, 자녀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처음 카메라를 접한 후로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들고 간다는 그는 대학교 교류협력팀장이라는 직업상 해외출장도 잦아 이국적인 풍경을 볼 때면 자연스레 사진을 찍게 된다고. 또한,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좋은 사진을 찍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인다.
“처음 사용했던 카메라가 1967년 생산된 페트리란 모델이었죠. 대학교 3학년 때까지 10여 년 동안 사용했는데 결국 수명이 다해서 나중에 똑같은 모델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습니다.”
노상근씨는 이밖에도 군 제대 후 직장생활 중에 구입한 ‘니콘 FM’을 비롯해 ‘라이카’, ‘콘탁스’, ‘펜탁스’, ‘롤라이플렉스’ 등 수동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2개를 포함해 10여 종의 카메라를 소장하고 있었다. 물론 ‘당대의 명기’라는 모델은 모두 사용해봤다. 렌즈 역시 30~40년 전에 생산된 것부터 디지털카메라용까지 20여 종의 렌즈가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평범한 생활 속 작은 여유를 사진에 담고자
40년 가까운 시간동안 변치 않는 노상근씨의 필름카메라 사랑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디지털카메라가 수동 필름카메라의 성능을 이미 능가했지만 ‘필카’는 디지털에는 없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수동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다보면 일부러라도 여유를 갖게 됩니다. 필름을 갈아 끼우고,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필름을 감아줘야 하고, 일단 찍고 나면 요즘의 디지털카메라처럼 지울 수가 없으니 찍기 전에 자연스레 신중히 생각하게 됩니다. 필름 한 통을 다 찍은 뒤엔 사진관에 맡기고 인화를 기다리는 설렘도 있죠.”
피사체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노상근씨는 ‘피사체와의 대화’라고 표현했다. 인물사진만 해도, 낯선 사람의 손에 들린 카메라 앞에서는 표정과 행동이 굳어버리지만 친근한 사람 앞에서라면 더욱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 사진에 담길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피사체와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 ‘일부러 갖게 되는 여유’란 무엇일까. 노상근씨는 언젠가 가족들과 화엄사에 갔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비를 피하느라 어쩔 수 없이 쉬어가야 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느낀 여유로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이와 함께 옛 카메라와 렌즈를 보면 장인정신이 느껴질 정도의 정교함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말한다. 1950년대에 설계된 렌즈를 아직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렌즈의 진화는 이미 50년 전에 끝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물었더니 노상근씨는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에게 사진은 생활의 일부이고 사진 속에 인생의 발자취를 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진 속에는 여유로움을 담고 싶습니다. 안빈낙도라고 하죠? 기회가 된다면, 나이든 어부가 부둣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듯 생활 속의 작은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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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근씨가 2006년 여름 비가 내린 다음날 천안 일봉산에서 촬영한 사진.
촬영정보: 카메라- Contaflex Super B, 렌즈- Carl Zeiss Tessa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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