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먹지 말아야 할 것.
조개 등 어패류, 땅콩, 버섯, 간, 코코아, 초콜릿, 밤, 건조시킨 과일이나 채소 등.
조성여씨의 자그마한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쪽지에는 이런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다.
음식섭취가 가장 기본적인 치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10만명중 3명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희귀한 병인 윌슨 병. 우리나라 전체에는 15~20명 가량이 투병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주 찾아간 아산의 한 가정에는 가족 세명중 엄마와 딸, 둘이 이 병을 앓고 있었다.
모녀가 함께 투병
조씨에게 이 병이 발병한 것은 지난 2007년.
2004년 불의의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2005년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조씨는 산업재해 보상을 놓고 갈등하던 그 때, 생소한 이름의 이 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한다.
얼마 후 소아당뇨, 고지혈증의의 증세를 보이던 딸도 윌슨병에 걸렸음이 확인됐다. 그때부터 살금살금 조심스런 모녀의 생활조절이 시작됐다.
윌슨병은 체내 구리의 저장과 이동에 장애가 생겨서 간, 두뇌, 신장, 각막 등에 구리가 축적되는 선천적 대사질환으로 구리 섭취 제한이 필요한 질환이다.
보통 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며, 초기에 간 효소치만 약간 증가된 무증상 간 비대로 시작돼 만성 활동성 간염, 간경화, 전격 간염으로 발현하게 된다고. 병이 진행될 경우 확연한 치매가 나타날 수 있고, 약 20%에서 정신과적 증상도 동반된다.
조씨도 현재 분열정동성장애로 정신장애 2급으로 등록돼있다. 언제나 우울증, 언어장애, 간질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 병원을 거쳐 휴대폰을 고치러 나온 조씨는 경기도 일원역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다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아무 기억이 없다지만 주변에서는 간질로 경기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년에 주기적으로 3번은 꼭 입원검사를 해야 돼요. 예전엔 약도 많이 먹었어야 했는데 요즘은 한끼에 3알씩만 먹으면 된다고 해요. 약값도 원래는 1일당 2만5000원이라는데 희귀병인 탓에 그래도 정부가 다 지원을 해주니 다행이죠.”
괜찮을 때는 비장애인과 구별이 힘들 정도로 건강하고 정상적인듯 하지만 언제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몰라 늘 불안한 상황이다.
올해 소원은 ‘약 덜 먹고 병원 덜 가기’
윌슨병 환자들은 일단 구리 섭취를 적게 해야 하므로 구리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 음식을 삼가야 한다. 하지만 구리가 워낙 식품 중에 널리 분포되어 있어서 엄격한 구리 제한식사가 영양적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하여 발생한 질병이기 때문에 병의 원인 자체를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까지는 없는 형편. 간 이식이 근본적인 치료로 간주되고 있지만, 치료에 동반되는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하여 널리 사용되지는 못한다.
“최근 검사때는 신장에 피가 비쳐 조만간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해요.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기 일쑤랍니다. 그런 날은 똑같은 길인데도 헤매고 다니는 경우가 생기곤 해요.”
조씨는 현재 장애수당과 사별한 남편으로 인해 받는 산재연금의 일부, 기초수급비 등으로 두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중이다. 작년까지는 한 복지관에서 매월 30만~40만원의 지원을 해줬었지만 그것마저도 이제는 끊어진 상태라고.
“올해는 그저 약 많이 안 먹고 병원 덜 가는게 소원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그저 감사드려요.”
딸과 함께 언제까지일지 모를 투병생활을 이어가야 할 조씨. 하지만 주변의 따듯한 관심과 이웃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