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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기축년 새해에는 고저 부자되기요”

중국동포 5인이 전하는 한국생활의 희로애락

등록일 2009년01월2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009 기축년 새해에는 고저 부자되기요” 새해소망을 전하는 중국동포들.

#1
연말연시. 크고 작은 모임에 회식이 잦은 시기다.
우리는 종종 이런 장소에서 약간은 말투가 색다른, 행동이 조금은 어색한 일꾼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중국동포’를 만나게 된다.
한국말을 하고 한국이름을 가진 그들. 그만큼 보고 듣는 표정이나 말투에도 민감하고 적응도 빠르다.
하지만 정부입장에선 그들 또한 여느 외국인 노동자들 일 뿐이다. 중국동포들은 최근 진행되는 재외동포법에서도 논의에서 배제돼있는 상황.
정부는 경기가 나빠지자 내국인 고용을 위한다며 최근 외국인 노동자 1명을 내국인으로 교체하면 12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까지 세워놓았다. 우리 동포들은, 외국인노동자들은 요즘 어떤 분위기 일까.

#2
천안 남산중앙시장통 작은 골목의 한 구석에는 ‘중국식품점(中國食品店)’이라는 상점이 있다.
석달 전부터 이 가게를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박의철·정명숙 부부는 지난 2004년 입국한 중국동포다. 가게에는 각 나라의 전화카드들. 중국술과 먹을거리 등 이국적인 상품들이 한국적(?)으로 진열돼 있다.
2009년 새해의 두 번째날.
쌀쌀한 날씨탓에 지나는 이들도 한적한 오후, 그 곳에는 미리 약속한 동포들 5~6명이 모여들었다. 어느새 이 구멍가게는 동포들의 사랑방이 된 듯하다.
가게와 연결된 작은 평상모양의 방에는 전기장판이 깔려졌고 그 위에는 모포 한 장이, 그 가운데는 온풍기가 놓여졌다.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열기를 나눠보려 해도 발이 시려운 것조차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새해를 맞아도 걱정꺼리 하나 이상은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선지 작은 불편쯤은 기꺼이 감춰버렸다. 커피 한잔씩을 마시며 나누는 한국에서의 희로애락.
동포들이 보는 한국은 어떤 나라였으며, 올해 이들이 바라는 소망은 무엇일까.

“세금, 내기만 해야 하는 건가요?”

중국 심양출신의 이영철(59)씨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였다.
지금도 문틀, 창틀 등을 만들고 마무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동포들은 일자리를 찾느라 힘들고 일하던 곳에서도 쫓겨날 형편이지만 이씨는 다행히 일거리는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딸을 먼저 한국에 시집보내고 아들, 며느리, 아내와 함께 한국에 입국해 고생해 온지 몇 년. 드디어 지난해 말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이씨는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4대보험이 동포들에게는 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건지 답답하다.
“4대보험이다 해서 다 좋은 제도들이잖아요. 내국인들은 나중에 다 받는다지만, 동포들은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거의 받을 수가 없어요. 매달 적은 월급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니 안타깝기만 하죠.” 시작부터 하소연이 시작됐다.

“사람대접 못 받는 동포들, 안타까워요”

연변 훈춘에서 왔다는 김인순(61)씨. 지난해 5월 처음 한국에 입국했다.
1년 먼저 들어온 용역일을 하는 남편과 천안 다가동에 살고 있다는 김씨는 허리가 아파 일을 제대로 못한다.
그동안 남편이 피땀 흘려 일한 돈으로 허리수술을 받으려다, 맹장이 아파 맹장수술을 먼저 하게 됐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한국도 사람들마다 너무 달라요. 기본적으로 예절로는 최고 밝은 나라이고 병원을 가도 어디를 가도 모두들 친절하기 그지없는데 일하는 곳만은 너무 달라요. 식당일을 하거나 보모로 일하는 동포들이 사람대우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김씨의 최근 고민은 한국에 들어온지 10년 됐다는 동생의 체불임금이다. 교회꼭대기에 올라가 십자가를 붙이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열심히 한 동생의 임금이 상당부분 체불되면서 안 좋은 생각도 하고 한참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아내 병도 못 고쳐주면 남편 자격이 없는 거지”

허정구씨는 (58) 흑룡강성 벌리현 출신이다. 한국에는 2005년 1월에 입국해 어느덧 만 4년이 지났다. 가족들은 중국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입국한 그는 그동안 무던히도 많은 일을 해왔다.
하수도공사, 건축물 폐기물 철거업체, 완도의 미역공장, 전남의 한 오리농장을 거쳐 현재는 천안의 한 쓰레기 분류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허정구씨의 소망은 아내가 한국에 나와 허리디스크를 고치는 일이다.
“중국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 하얼빈 대학병원에서도 수술이 안 된다더만. 돈은 다 준비되고 했는데 초청자격이 없어서 아내를 못 데리고 들어왔어요. 조만간 함께 들어와 마누라 고질병을 꼭 고치고 싶습네다. 아내병도 못 고쳐주면 남편 자격이 없는 거지”하며 새삼 의지를 다진다.
고된 삶을 잊으려는 듯 56도나 되는 중국술 5ℓ짜리를 한 병 곱게 싸서 먼저 일어나는 허씨.
하지만 북경대 2학년에 재학중인 딸과 남겨 두고온 아내를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할 각오다.

“돈 많이 벌어 가족들 다 함께 사는게 소원”

김옥순(50)씨는 연변 화룡출신으로 지난 2007년 3월에 입국해 식당일을 해오다 얼마 전부터 개인사정으로 휴직중이고 다시 일자리를 찾고 있다.
한국의 경기가 나빠지다보니 좋은 조건의 일자리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남편도 5개월전 한국에 입국해 일을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나온 아들은 돈을 벌러 일본에 가 있는 상황.
“고저 돈 많이 벌어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게 소원이죠 뭐.”
눈 마주치기도 불편해하며 긴장하던 김씨가 어렵게 뱉은 올해 소원이었다.

“안 해본일 없디요”

이 가게의 주인인 박의철·정명숙 부부(57·54)는 연변 연길 출신으로 그곳 고등학교에서도 매점을 운영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박씨의 이력도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처음에는 양계장에서 일했더랬어요. 계란받고 똥 치우고 하는 일이었죠. 그러다 아파트 청소도 하고 신문배달도 하고 중국집 배달도 했단 말입니다. 지금은 경비를 하면서 이 점방을 하고 있디요.”
함경도 여주가 고향이라는 그에게서는 고향 사투리가 아직도 뚝뚝 묻어난다.
고혈압이 있는데다 같이 들어온 아내 정씨가 다리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아내와 함께 그동안 모은 돈을 투자해 가게를 임대해 운영하게 된 박씨. 딸과 함께 셋이 생활하는 탓에 다른 동포들보다 조금은 안정된 느낌이었다.

‘만만디’와 ‘빨리빨리’의 차이

“인천공항에 내려 고속도로를 타면서 정말 놀랐죠 ‘햐~, 한국은 정말 엄청나게 발전했구나 ’하면 서요. 기대와 다른 부분도 많았지만 인정할 부분이 정말 많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박의철 씨가 말문을 열기 시작하자 누구라 할 것 없이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처음 제일 힘든 것은 바로 국민들의 기본 정신이라고. 중국의 ‘만만디’와 한국의 ‘빨리빨리’의 차이지. 중국에서는 그저 ‘하나하나 해가지’. ‘오늘 못하면 내일하지’인데 여기서는 그럼 살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게 발전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중국이 국력은 한국을 벌써 앞지르고 있지만 그런 국민성은 절대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한국은 산골 구석을 가도 노인회관이 있고, 65세 넘으면 버스비도 나오고, 복지혜택이 엄청 좋아요. 중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한국에서는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신체만 허락된다면 기회의 나라라는 거지. 중국은 그렇지가 못하거든.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일하다 들어간 사람들 중 타락하고 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한국에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도맡아 하다보니 무정하고 야박한 인심에 상처 한번 받아보지 않은 사람들, 사연없는 사람들이 없었다.
한국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여유 뿐. 정붙이고 마음을 두고 싶은 대상이나 추억은 여전히 미미하기만 하다.

“통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섭섭했던 것? 글쎄 말하자면 그런 거지요. 중국이 사실 나라가 못사는 거지. 사람이 못난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이 중국이라면 그저 무시하려 들고 얕잡아 보려고 해요.”
“맞아요. 여기 정구씨도 한달 월급을 못 받았다지만 제가 아는 친구는 900만원을 떼인 적도 있어요. 일을 시킨만큼 월급만 제때 준대도 문제가 상당히 많이 줄어들 것 같아요.”
“그나마 동포들을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예전과는 분위기가 좀 달라요. 노무현 대통령 때는 한국국적 가진 사람 1명이 5명을 초청할 수 있었는데 작년 10월15일부터 3명밖에 초청할 수가 없어졌어요. 그 때문에 조카가 제 아내를 초청하지 못해 수술도 늦춰져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의료보험 같은 것도 문제에요.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싶지만 입국일로부터 계산해서 월별 보험료를 다 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일을 쉬거나 보험미적용 대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밀린 금액이 커져 대부분 보험을 안 들려고 하게 됩니다.”
“사실 중국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이 고국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요. 길림성 이내는 북한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흑룡강성 이북에는 또 경상도 사람들이 많아요. 통일이 되면 제일 좋겠죠. 동포들은 대부분 통일이되면 남한도 좋고, 북한도 좋고, 동포들마저 좋다며 정말 소원하고 있답니다.”
“제 형님도 황해도 사시는데 서울서 만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통일을 해선 안된다는 사람들은 역사에 지우지 못할 죄를 짓는 걸지도 몰라요.”

“올해는 고저 돈 많이 벌기요”

한국의 경기가 어렵다보니 동포들의 마음은 더 춥기만 하다. 일자리도 줄어들고 분위기도 빡빡해졌을뿐 아니라 눈치도 더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아직 새해를 맞은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아직까지, 혹은 올해 첫날 마음에 품었던 소원들을 물어보았다.
“소띠해 고저 소처럼 열심히 일해서 돈많이 벌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가치를 알려주고도 싶고 남편, 가족들 뒷바라지도 잘 하고 싶고요.”
김인순 씨가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소원을 먼저 말해버리자 다른 동포들은 다 자신의 소원과 겹치는 듯 말문이 막혀버리며 헛웃음만 짓는다.
“전 그저 아내의 고질병을 고쳐줬으면 해요.”
“정부에서 좀 더 제도적으로 도와주면 좋겠어요.”
그래도 역시 계속 일할 수 있고 돈 많이 버는 것을 우선할 소원은 누구도 생각한 게 없었다.
“2009 기축년 새해에는 고저 부자되기요.”
서로에게 던지는 최고의 덕담이자 올해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


“천안사는 중국동포만 1만명 넘을 것”

“현재 방문취업과 고용허가제 취업자까지 해서 천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중국동포만 6000여 명 정도고 불법체류 동포가 4500여 명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동포만 만명이 넘고 한족까지 더하면 중국국적의 노동자들이 1만5000~1만6000 될 겁니다. 천안이 안산, 의정부 다음의 대규모 동포 집결지역입니다.”
중국동포의 집 강범식 소장의 말이다.
천안, 아산의 건설현장, 요식업계에서 중국동포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정부는 고용악화를 최소화하고 내국인의 고용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조선족 등 재외동포의 취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 대규모 토목·건설사업에 치우치면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결국 외국인으로만 채워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건설 쪽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동포는 정부추산으로도 8만명에서 10만명.
천안에 몸을 누일 곳을 두고 있는 이들과 이들의 가족, 동포들의 기축년은 결코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희>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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