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선명한 흉터가 있는 검은 얼굴, 부리부리한 눈, 큰 키에 비척비척한 걸음걸이.
73년생 소띠 황필현(지체장애 3급)씨의 겉모습은 얼핏 무섭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필현씨는 누구보다 일하고 싶어하고, 생활속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소박한 총각이다.
평소 걸음이 불안했던 필현씨는 중3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시내버스를 타려던 황씨가 미처 몸을 싣기도 전에 차가 출발했고 넘어진 그의 몸 위로 버스가 지나갔다고 한다. 당시 꼬리뼈가 부러지고 정신을 잃었던 필현씨는 그 후 꼬박 6개월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때가 제일 심심하고 답답했어요. 회사다니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요. 예전엔 생각도 못했던 일이죠. 일을 안 하면 시간도 안 가고 결국엔 몸도 더 힘들어 지는 것 같아요.”
필현씨는 몸이 좀 나아지자 곧 야간학교에 다녔고 얼마 후 인애학교에서 전공2년 과정을 수료했다.
다양한 경력의 노동자 황필현 씨
인애학교를 나온 필현씨는 학교의 알선으로 동창 몇과 함께 마늘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썩은 마늘, 싹난 마늘을 골라내는 일을 맡았었는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늘 썩은 냄새가 거의 지린내에 가깝거든요. 일하다보면 취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에요. 옷에 냄새가 배면 정말 장난 아니에요.”(웃음)
손이 더디다 보니 일이 밀려 아침에 시작한 일을 밤 늦게까지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후 제약회사, 맨홀공장 등에서 이일 저일을 하다가 마침내 정착한 곳이 바로 지금 일하는 천안시보호작업장이다. 다른 곳에서는 종종 상처받고 마음이 더 힘들 때도 많았지만, 여기서는 사려깊은 선생님들의 적절한 지원과 배려로 이전 직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 할만 하다.
작업장에서 하는 일은 자동차 헤드레스트 만들기, 볼펜심 끼우고 조립하기, 조화 만들기 등. 요즘은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어 걱정이지만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만 하다. 일을 하면서 한빛장애인야간학교에서 다시 시작한 공부도 어느덧 3년을 훌쩍 넘겼다.
행복할 준비, 게을리 하지 않아
필현씨는 올해 목표로 운전면허와 PC정비사 자격증 따기를 세웠다.
“경찰인 형이 그러는데 저도 운전면허를 딸 수 있데요. 그럼 더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 PC를 고쳐주러 다니고 싶어요.”
또 한참 재미를 붙인 취미활동 ‘사진찍기’에 필요한 꾸미기와 동영상 편집도 배우고 싶다고.
여자친구는 없냐고 장가가야 되지 않냐고 묻자 이내 몸을 배배 꼬는 필현씨. “나같은 사람한테 올 사람이 있겠어요?”한다.
그러다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내가 애기였을때 잘 못 걸으니까, 부모님은 벽에 줄을 이어서 걷기 연습을 시키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목발을 짚고 학교에 다녔고 중학교때는 불안하지만 목발없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면서 혈압도 생기고 건강도 꽤 안 좋아지셨어요. 내가 장가를 갈지 안 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대로 독립할 수 있을때까지 꽤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눈물을 글썽이는 황씨. 그동안 가까운 이들에게 걱정도 많이 시켰었지만 그들의 소중한 마음과 사랑을 잊고 있지는 않았나 보다. 자신의 띠인 소의 해를 맞아 주어진 여건에서 더 행복할 준비를 하고 있는 필현씨. 그에게 행복은 필연처럼 찾아오고 있지 않을까?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