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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모자라, 헌혈의 집엔 가봤나

유가파동보다 심한 혈액대란… 바닥난 혈액, 생명 위협으로 이어져

등록일 2004년08월2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천안 헌혈의 집을 찾는 이들 중 대다수가 대학생이며, 특히 여대생들의 헌혈률이 높다.

피가 부족해 난리다.

무더위가 기승부리는 올 여름. TV나 인터넷, 거리 포스터 등이 공포영화로 도배되고, 드라큐라 인기도 ‘더위지수’만큼 쑤욱∼. 그래서 피가 부족한가. 피는 사람에게 있어 생명수와 같다. 건전지 없는 장난감이 움직이지 못하듯, 피는 인간을 살아있게 만드는 건전지다. 이 사회가 갈수록 피를 필요로 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첨단화된 사회로 발전하면서 부작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늘고, 이상기후로 인한 천재지변이 속출하고 있다. 각종 환경오염에 노출된 사람들의 2세가 각종 질병을 안고 태어난다. 모두 피를 수혈받아야 하는 처지다.

50만 도시에 헌혈의 집은 한 곳뿐 200만 충남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천안시. 비대해진 도시는 인산인해로 뒤덮이며, 낮에는 교통지옥, 밤에는 불야성을 이룬다. 여기에 ‘헌혈의 집’은 딱 한 곳. 한때 가장 번화한 거리로 알려진 천안역에서 온양나들이쪽으로 40여m 남짓 걸으면 2층 간판이 보인다.

“어서 오세요. 날씨가 꽤 무덥죠.”상냥한 목소리로 간호사 복장의 두 여직원이 웃음을 살짝 머금고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거기, 탁자에 적는 용지가 있어요. 뒷부분까지 적어주시고요. 다 적으셨으면 이쪽에 오셔서 혈압을 측정하세요. 아픈 곳은 없죠.”

헌혈의 집이 이곳에 정착한 지 5년.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신부가 신랑을 맞듯 한결같이 다정히 맞아주는 여직원이 있다. 8개의 헌혈의자는 빈 곳이 없다. 입은 방문객들을 향해 연신 뱉아내도 일하는 손놀림은 한석봉의 붓놀림도 저리 가라 할 정도. 숙달된 동작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안전한 피공급 ‘만전’헌혈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전날 술마셔도 안 되고 몸에 이상이 있거나 근래 병원치료를 받은 적도 없어야 한다. 물론 혈압 최고치가 1백을 넘어 정상치를 보여야 ‘통과’된다. 안전한 혈액을 위해 지난 7월부터 신분증 확인과 등록헌혈제를 도입하고 있다.

피검사는 기본. 일회용 주사, 일명 ‘따끔이’가 약지 손가락에 피를 내 혈액형을 알아본다. 건성으로 말하는 혈액형을 믿고 기록해 둘 수는 없는 일. 간호사의 빈틈 없는 절차가 진행된다.

“전혈과 혈장이 있는데요. 어떤 것으로 하실래요. 요즘 들어 전혈이 부족하긴 한데, 원하시는 쪽으로 해드릴께요.” 또다시 상냥한 간호사의 말을 듣는다. 원하시는 대로 빼라는 대답과 동시, 그네들이 원하는 ‘전혈’로 결정된다. 피 4백㏄를 빼는 전혈은 10분도 채 안 걸린다. 볼펜심만한 주사구멍이 혈관을 뚫고 들어가 5천㏄의 피중 1할에 해당하는 피를 빼간다. 혈장은 30분이 넘게 걸린다. 전혈을 받은 후 혈장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시 주인 몸 속에 집어넣어주기 때문에 몇 배 시간이 걸리는 것. 하지만 전혈자의 회복기간이 두 달인데 반해 혈장자는 2주면 거뜬하다.

10명 중 7명이 대학생 ‘수훈 갑’이곳 헌혈의 집은 나름대로 운영이 잘되는 편. 상냥하고 숙련된 간호사들 덕분이다. “다른 곳에 비해 괜찮은 거지, 실상 여기도 많이 부족해요. 인구비례로 볼 때 하루 40명 이상은 방문해야 하는데 25명도 빠듯해요.”

2001년 하루 평균 21명에서 많게는 32명까지 받아 연인원 8천7백97명이 헌혈했지만 2002년에는 17명선까지 떨어지며 7천3백22명이 다녀갔다. 2003년에는 더욱 떨어져 6천9백56명이 다녀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걱정이 앞서는 와중에 올해는 지난해보다 ‘약간’ 높게 나타나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대학생들이 7할 정도 차지할 거예요. 2003년부터는 대학 대부분이 헌혈하는 학생에게 ‘봉사시간’을 인정해주는 제도를 도입해 20∼30%는 증가한 것 같아요.”

한 간호사가 자세히 통계내보진 않았지만 자신이 느낀 대략적인 수치를 추정했다. 대학생 중에도 여학생들이 찾는 빈도가 높다. 금남의 집이라도 되는 양 여학생들의 거리낌 없는 행동과는 달리 가끔씩 보이는 남학생의 경우 ‘바늘방석’에라도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 여자친구의 손이나 과 친구들 속에 섞여 모습을 비치는 것이 고작이다.

이들 말고는 이른바 ‘단골손님’들이 주로 찾는다. 피도 빼본 사람이 뺀다나. 헌혈의 집에 따르면 습관적으로 찾는 사람이 7할에 이르고 있다. 공무원인 윤재필씨는 천안에서는 ‘헌혈짱’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가 하는 헌혈은 한 달에 두 번이 가능한 혈장헌혈. “내년 이맘때면 2백회를 돌파”할 것이란다.

헌혈보람과 함께 선물도 가득사람에게서 빼낸 혈장은 곧바로 영하 30도 이하로 보관한다. 혈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쓰여지기까지 제일 신선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온도다. 전혈 보관소가 약간 서늘한 기후라면 혈장은 북극을 연상시킨다. 어떤 이는 ‘먹는 재미, 받는 재미’로 헌혈한다고 주장한다. 서류작성 등 약간의 번거로움과 손가락, 팔뚝부분이 따끔해지는 것을 참아내면 그 다음부터는 ‘행복 시작’이다.

먼저 헌혈하기 전에 음료수를 제공받는다. 다 끝낸 다음에는 도서상품권이나 미니 샴푸세트, 필기도구 등 서너 가지 선물 중 택일하고, 영양을 보충하라는 뜻에서 과자(이곳은 와플을 준다)를 받는다. 차를 가져온 이들에겐 주차권도 추가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선물은 ‘건강’과 ‘보람’이다. 몸의 묵은 피를 빼냄으로써 신선한 피가 생성되게 도와주고, 며칠 뒤 몇몇 질병검사에 대한 결과를 통보받는다. 자신의 피가 생명구하는 일에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보람이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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