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글씨보다 순한 글씨, 강한 글씨보다는 유한 글씨를 쓰고 싶다.”
순리란 따르는 것이지 역행하지 않는 법이다. 취묵헌 선생이 추구하는 서예는 바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닮아있다. 백과사전에는 ‘상선약수’를 이렇게 풀이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자서고신(自徐顧身)/ 서예에 마음을 둔 이래로 순수하고 참된 마음으로 먹을 갈아 칠십을 바라보게 되었네. 나이 사십에는 일가를 이룰 때가 언제이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 기약없는 슬픔으로 여러날 폭음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네. 세월은 급변하여 문·사·철이 있지 아니한 문맹의 시대니 더욱이 글씨는 바램이 없네. 옛사람 이르기를 ‘내 이것은 스스로 즐길 뿐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네’ 하니 진실로 옳다.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 뉘라서 글씨를 알아주랴! 다만 습윤한 먹을 갈구하여 오늘도 화선지 위로 붓이 내달릴 뿐이네.
천안예술의전당이 11월20일(금) ‘취묵헌 인영선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회는 12월13일까지.
천안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에 서예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취묵헌 인영선전을 마련했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혜경 학예사는 인영선을 이렇게 표현했다.
“50년간 한 분야에서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과감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작업에 임해온 사람. 자기만의 독창성과 창의성으로 오랜 시간 끈기와 집중력으로 글씨를 써내려간 연마와 인격도야의 흔적 속에 글이 곧 그 사람이라는 ‘서여기인(書如其人)’으로 설명되어진 인품을 가진 분이다.”
전시회 제목도 이를 잘 나타내는 ‘흐르는 물처럼’으로 잡았다.
먹을 잔뜩 품은 구름이 비를 뿌려 산 정상부터 드넓은 대지와 하천, 바다에 흩뿌려지거나 흘러내려가듯이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먹으로 표현된 예술세계를 보여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작품집의 글은 그의 제자 착벽 이명복씨가 썼다. 항상 스승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 누구보다 잘 알 것 아닌가. 게다가 이번 전시회는 마침 선생이 고희(古稀)를 맞은 해. 애틋함은 가까운 제자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착벽은 선생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는 꿈이 있다. ‘착벽! 나는 요즘도 자주 글씨꿈을 꿔.’ 온종일 글씨밖에 모르시고 밤마다 글씨를 품고 주무시니, 글씨꿈을 꾸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글씨에 뜻을 둔 이래 하루하루를 글씨 좋아 이 세상을 사시는 분. 선생에게 글씨는 이 세상을 살아오신 이유이며,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살아가실 축복이다.”
착복의 말처럼, 인영선 선생은 명리와 부귀를 탐하지 않고 오로지 묵(墨)에 취해 일생을 자오(自娛)한다는 ‘취묵헌’이란 호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일중 김중현(1921∼2006) 선생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2014년 일중서예상의 4번째 대상 수상자로 전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전시된 작품 50여점은 그가 묵으로 표현한 예술세계. 힘차고 부드러운 붓 선의 변화는 감흥과 운치를 만들어낸다. 시와 문학이 포함된 엘리트 문인들의 인문학적 소양의 산물이며 자기만의 독창성과 창의성으로 오랜 시간의 끈기와 집중력으로 글씨를 써내려간 연마와 인격도야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혜경 학예사는 “서여기인(書如其人)처럼, 인영선 선생의 인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서예작품을 통해 서예의 전통과 멋을 느껴보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