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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은데 “서각 좀 배워보시렵니까”

조명호(45·서각가)/ 깎고 다듬고… 서각의 매력에 빠져 인생을 보내다

등록일 2015년11월0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서각 좀 하겠다고, 예술 좀 해보겠다고 한 적이 언제인지….

천안 북면 연춘리에서 북면사무소쪽으로 조금 오르다 오른 들녘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작은 비닐하우스. 그곳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서각가, 조명호(45)씨.
 

“95년쯤이었나요?”

그로부터 가난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녔지만 후회는 없다. 직장을 구하면 하고싶은 일을 포기해야 한다. 아니, 포기는 아니더라도 대충 하게 된다. 일이 우선시 되는게 싫었다.

“그때는 젊다는게 자산이었고, 젊은 치기는 예술만 해도 배고픈 걸 잊을 줄 알던 때였죠. 그런데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뼛속 깊이 느끼고 삽니다.” 

돈이 없어 변변한 스승 한분 모시지 못한 그.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전시회’를 돌아다니는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어느 정도 배운 후에는 소위 ‘백’ 없으면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됐다.
 

주문제작 위주로 작업을 해서인지, 그가 보관하고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들은 다양한 기법으로, 그의 창의력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군대를 막 제대한 93년 남산중앙시장의 ‘대동땅콩’. 주인아주머니는 그에게 배움을 알게 해준 평생의 은인같은 분이다. “넌 장사가 안어울려.” 집히는 것이 있어, 무얼 배울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가까운 곳에 취묵헌 선생이 가르치는 ‘이묵서회’가 있어 그곳을 찾아갔다.

“거기서 서실총무를 맡고 있던 아내를 만나는 행운도 거머줬죠. 아내는 서울에서 썩 괜찮은 직장도 그만두고, 서예를 배우겠다는 일념에 보따리를 싸서 천안에 내려온 괴짜였답니다.”
 

작업실 옆, 차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 같은 곳.

97년에 결혼하고 나니 가슴 한복판으로 훅 들어오는 게 있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는 것. 서각에 빠져있는 사람으로써, 그래서 직장생활도 변변히 못하는 환경에서 남들 다 꾸리고 사는 가정이 그에겐 무거운 짐처럼 여겨졌다.

점점 궁핍해지던 어느날, 허름한 오토바이 한 대에 ‘버섯파지’를 구해 실고 무작정 시내로 나갔다. 시내 식당가를 돌면서 파지 거래처를 뚫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같은 장사수법이 흔치 않았다. 사업이 될까 싶어 ‘홍지원’이란 가게도 내고, 다시 ‘버섯돌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확장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시쳇말로 ‘말아먹었다’
 

그런 중에도 서각에 대한 공부는 게으름을 피지 않았다. 비록 공모전이나 전시회에 한번도 머리를 내밀지 않았지만, 묵묵히 배우는 일에는 전념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몸도 약한 아내, 그리고 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 그야말로 경제적 사정은 밑바닥.

이번에는 콩나물장사를 시작했다. 정확히 새벽 1시15분이면 잠을 깨서 당일 오전까지 각 마트를 돌며 콩나물을 공급하는 일. 그렇게 해야 오후라도 서각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수 있었다.
 

서각에 사용되는 도구는 칼과 정 정도로 간단하다.

“그런데 지난 5월 갑자기 ‘다리마비’가 찾아왔어요. 가뜩이나 기름값도 안나오는 형편에서, 그날 새벽 다리가 안움직이는 거예요. 10년동안 새벽일을 하다보니 몸이 망가지더라구요.”

그로부터 할 수 없이 전업작가가 돼버린지 6개월째란다.

그의 서각은 좀 더 특별하다. 현대서각도 아닌데다 전통서각은 더더욱 아니다. “한번은 죽을 만큼 아프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각을 하는데 왜 앞뒤를 뻥 뚫으면 안되는 걸까?” 바로 작업에 몰두해 뚫어버렸다. 통쾌했다. 이렇게 하면 되고, 그렇게 하면 절대 안된다. 뭐 그런 거는 없잖은가. 서각의 가치도 서각기법을 통한 자기만족이지, 기교의 정형화된 틀에 누가 더 잘 맞춰 다뤘느냐의 싸움이 아니질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자기 생각대로 서각화한 것들이 많다. 생각도 자유롭고 기교도 자유롭다.

“서각하시는 분들이 보면 ‘그게 뭔 서각이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술은 기교보다 창의력이 우선돼야 하는 일입니다. 그게 맞지 않겠습니까? 누가 뭐래도 제 방식을 고집하겠습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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