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밤송이처럼, 호두열매가 벌어진 틈 사이로 호두가 보인다.
김천시 450톤, 영동군 250톤, 무주군 100톤, 천안시는 겨우 60톤.
전국 호두생산량에서 천안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8% 수준. 한때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감당했던 천안시가 4위에 머물러 있다. 광덕호두는 264ha 규모, 7만본을 166개 농가가 재배하고 있으며 매년 68톤, 10억원의 수입을 내고 있다.
천안시의회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시행정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천안호두는 껍질이 얇고 고소합니다. 양으로 안된다면 품질로라도 경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연응 의원은 천안의 대표특산물이 이렇듯 푸대접을 받아서 되겠냐며 시의 무관심함을 질타했다.
갓 꺼낸 호두알맹이가 먹음직스럽다. 고소한 맛이 일품.
물론 천안호두가 고소하다거나 영양분이 많다거나 하는 주장을 검증하지는 못했다. 광덕에서 수십년째 재배해온 사람들도 천안만의 특별한 ‘고소함’을 분간해내지 못한다 하는데 어찌 천안호두만 고소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영양분이 많다는 주장도 전문연구소에 의뢰, 제대로 비교분석해본 적이 없는 형편이다.
호두 생산량이 더욱 적어지다 보니 최근에는 광덕호두축제를 개최하기도 쉽지 않다. 천안시에서 ‘호두웰빙특구’를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결국 지정되지 못했다.
“광덕호두 전통, 우리가 이어갈 겁니다”
15일 오후 5시가 다 된 시각. 광덕면 광덕리 300번지를 향해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험로. 산골짜기 마을에서도 가파른 길을 타고 더 깊이 올라가야 하는 길이었다. “파라다이스 호두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비게이션의 목적지가 끝나는 순간, 주인 이명종(67)씨와 그의 두 아들 이한민·이한음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곧바로 작업차량인 트럭으로 바꿔타고 산 위로 오르는 길은 놀이동산의 청룡열차라도 탄 기분. “그릉 그릉”, 엔진이 가열되고 어디선가 탄내가 나는 듯. 가까스로 산 위에 오르니 확 트여진 전망이 불안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녹여버린다.
비탈길에 심겨진 호두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이 지났네요.”
처음, 잡목으로 우거진 산비탈을 보며 난감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벌목허가를 받아내야 했을 것이고, 나무를 베어내고 정비하는데 많은 애를 썼을 것이다. 산비탈에 길을 내는 것은 더없이 힘든 일. 최대한 경사도를 낮추기 위해 구불구불 길을 내고, 돌무더기를 담장처럼 단단하게 쌓았다.
“이곳에 재배되고 있는 호두나무는 모두 1200그루 정도 됩니다.”
처음엔 묘목을 심어 가꾸면서 기대도 컸던 바, 나무들은 크면서 잘자라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로 나뉘었다. 일부 묘목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몇 년이 흐른 상황. 어쩔 수 없이 해당 나무들을 베어내고 새로운 묘목으로 다시 심는 작업을 거쳤다. 묘목의 중요성을 실감한 이씨는 아예 직접 튼실한 묘목을 길러냈다.
호두열매를 수확하는 방법은 장대로 내려치는 것.
이들 부자는 수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열매가 가장 많이 열린 호두나무를 찾았다. 그리곤 명종씨는 장대로 후려쳐 따내고, 7남매중 여섯째인 이한음씨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떨궈냈다.
호두는 겉에 생채기가 나도 상관없는 일. “후드득 후드득” 요령껏 내려치는 장대에 잘도 떨어졌다.
장대로 내려쳐 바닥에 떨어진 열매가 줍기 좋게 모여있다.
호두열매를 갉아먹는 청설모도 문제지만 새들도 이렇듯 호두속 열매를 쪼아먹는다.
이들 부자가 즉석에서 호두 속 알맹이를 꺼내준다.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타 지역 개량호두도 몇 개 보여준다. 크기는 개량종이 좀 더 크고, 껍질은 광덕호두가 더 단단하다. 고소한 맛도 광덕호두가 나은 듯. 한음씨는 “열매를 바로 까서 먹으면 광덕호두가 더 고소한데, 수확 후 숙성시키면 그 차이가 비슷해진다”고 설명한다.
호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호두수확하는 작업도 보여주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더 어두워지면 가파른 비탈길이 위험해진다.
“호두는 묘목이 커서 판매할 만큼의 호두가 열릴 때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제가 호두농사를 시작한 것은 경제수익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땀흘려 농사짓는, 일하는 기쁨을 맛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죠.”
‘호두박물관’을 목표로 파라다이스농장을 경영하는 이명종씨. 그에겐 1200그로의 호두나무가 있다.
이명종씨가 호두농사 한해수익은 2000만원대. 1200그루라지만 아직은 덜 큰 나무들이 많기 때문으로, 이제부터 해가 바뀔 때마다 수익은 껑충 올라갈 것이다.
호두농사의 좋은 점은 다른 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간다는 것. “사과농사만 해도 일주일 멀다하고 약을 주는데, 호두농사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늦가을에 거름 한번 주고, 초봄 전에 비료 한번 주면 크게 신경쓸 것이 없죠.”
좀 더 속깊은 이야기도 꺼내놨다. 파라다이스농장은 단순히 호두농사로 만족하지 않고, 5년 안에 ‘호두박물관’을 짓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또한 2차 가공업을 통해 수익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식도 많이 쌓았고 해외견문도 넓혔으며 자료도 많이 모아두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갖고있는 ‘파라다이스 농장’ 자체의 지리적 환경은 ‘A점’. 잘만 가꾸고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한다면 여느 관광지보다 뛰어난 상품성을 갖고 있다.
“외부인에겐 처음 공개하는 농장입니다. 뭔가 만들어놓은 뒤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컸지만 오늘 공개한 것을 계기로 5년 안에 멋진 호두박물관도 만들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개발해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