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순신 장군이 좋소. 출세지향이 아닌 가치지향을 가진 그가 너무 좋소. 겸손·미덕·헌신·봉사의 인격적인 리더십을 갖춘 그가 그 누구보다 좋소.”
이석희 선생(70·신방동). 시조와 대금을 열정적으로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간 다가동 공구상가 주변 유림회관(천안유림 명륜대학). 대뜸 보자마자 ‘이순신 예찬’에 침이 마른다.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하다 주머니에서 세 개의 명함을 내민다.
‘천안향교 명륜대학 대금·시조반 강사’에다 ‘도솔시조창 연구회 교육담당’. 그리고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내민 또하나의 명함,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선임연구원’.
“시조는 얼마나 배우셨습니까?”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공부역사는 짧소” 한다. 2011년 8월 천안향교 시조반에 입문했으니 이제 만4년이다.
“그런데 말이요. 심심풀이로 배운 것이 아니란 말이요. 사람들이 그럽디다. 남들 15년, 20년 배울 것을 3년만에 다 배웠다고요.”
불나방 같은 열정. ‘부지런한 가난뱅이는 모든 일을 공평하게 하지만, 게으른 백만장자는 가장 중요한 일에 전력투구한다’ 했던가. 그는 게으르지도 않지만 시조에 전력투구해 마땅한 성과를 일군 것이다.
그런 그에게 천안향교 명륜대학은 배움의 공간을 내줬다. 그를 찾아 등록한 사람은 50명에 이른다. 다들 장년층의 인생현역들. 일주일에 한번 찾아들지도 못할 만큼 산업역군으로 바쁜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
“그래, 내가 (그들에게)그랬죠. 늙어빠진 몸이니 내가 시간을 내드려야지, 하고. 저는 하루종일 이곳을 지킵니다. 그네들이 편히 어느때나 배움을 찾아 나에게 올 수 있도록. 물론 수업료는 공짭니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시조만이 아니다.
대구사람인 그가 2008년 둘째아들이 사는 천안에 올라와서 위암수술(위 절제수술)을 받고, 그의 말대로 “십이지장이 목에 달려있을 만큼” 열악한 몸상태로 “이제 죽는가 보다. 이 세상 끝인가 보다. 하나님이 날 데려가나 보다(가톨릭신자)”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한 상태에서 접하게 된 시조와 대금.
치료목적으로 천안 신방동에 자식들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혼자 살게된 그. 죽으나 사나, 죽으나 사나… 하며 숨만 쉬고 있던 때.
“시조를 접하며 한산도가를 알게 됐죠. 우리나라의 기본음을 만들고 정악을 완성시킨 세종, 우리나라만의 음률 정간보(황·태·중·임·락), 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정확히 표시할 수 있도록 한 세종대왕 위대함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사상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매일 낮, 밤 이순신 장군을 알려 열을 올렸다.
하릴없이 현충사를 얼쩡거리던 때도 많았다. 그러다 알게 된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의 유익한 강의 등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많은 지식을 쌓게 됐다는 그. 인터넷카페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를 받았다.
“밤새워 이순신을 배우고 연구하고 분석하다 보면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나고 목이 메입디다.”
2012년 3월 초순 당시 김종성 교육감을 면담하고, 충남교육청에 교육기부자로 등록했다.
초등학생부터 한산도가를 중심으로 한 시조와 대금을 가르치며 ‘강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순신연구소에서 100명의 일반인을 놓고 교육도 했다. 이순신연구소 임원빈 소장의 권유로 ‘한산도가 시조창전문가’란 이름을 달고 이순신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대금을 불 때가 없어서 헬스클럽을 등록하고 그곳 탈의실에서 연습했고요, 늦은 밤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 가르칠 데가 없어서 천주교성당 한 켠을 얻어쓰기도 했습니다. 왜 그토록 열정을 갖고 사냐 묻는다면 가치지향, 백성(나라)중심의 삶을 사신 이순신 장군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의 삶이야말로 인간리더십의 표본이 아닙니까."
그는 이순신 장군의 광 팬이었다.
"이순신 장군만 알면 됩니다. 가치관이 뒤집힌 세상에 이순신만이 명약입니다. 시조를 통해, 대금을 통해, 그런 것들을 통해 이순신의 위대한 사상을 널리 본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될 수 있도록 제 힘껏 노력해나갈 겁니다.”
“시조를 배우다 보니 대금과 찰떡궁합이더군요. 그래 2012년 7월 대금반에 입문했어요. 배우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서울로 올라가 명망높은 분에게 17개월쯤 배웠습니다. 전 이렇게 말합니다. ‘대금없이 시조를 가르치는 건 사기다’라고요. 그만큼 시조와 대금의 앙상블이 좋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