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동에 사는 어느 간부공무원. 주머니에는 늘상 펜이 아닌 커터칼을 갖고 다닌다.
집에 일찍 들어가든, 저녁모임이 있어 늦게 들어가든 상관없다. 그가 야구선수라면 ‘커터칼’은 야구방망이. 매일 타석에 들어서는 그에게 늦은 밤, 집 주변 길가의 불법현수막은 그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같은 노력으로 가로수에 걸려있는 불법현수막이 땅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치우는 것까지는 양이 많아 어쩔 수 없지만, 새벽녘 수거차량이 한바퀴 돌면서 처리할 것이다.
출퇴근길의 불법현수막. 특히 분양홍보를 위한 현수막이 대로변에 빼곡하게 걸려 도시미관을 어지럽히고 있다.
천안시 서북구청(구청장 한동흠)이 ‘불법유동광고물 세부시행계획’을 마련했다.
인구는 날로 증가하고, 그에 따라 도시규모가 커지면서 각종 불법광고물들이 거리미관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판단 아래 불법유동광고물 수거·단속활동을 강력히 시행하기로 했다.
불법유동광고물 문제는 비단 천안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 어느 지역을 가나 대동소이할 뿐 거리미관을 해치는 주범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2015년 불법유동광고물 정비계획까지 세워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로 선정해놓고 있다.
“단속·수거인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몰래 현수막을 붙이는 사람들은 낮이든 밤이든, 평일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아요. 천안시내가 너무 넓은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한정없이 인력을 늘릴 수도 없잖습니까.”
출퇴근시 대로변. 어떻게든 노출시키겠다는 사람들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노출시키지 못하게 하겠다는 공무원(단속요원)들간의 머리싸움이 치열하다. 어떤 공무원은 현수막의 일부를 훼손시키는 방법으로 짧은 시간 노출방지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단속 관계자들은 매일 매일 수거해도 끝없이 붙여지는 불법현수막에 혀를 내두른다.
참고로 양 구청에서 최근 3년간 단속실적을 보면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동남구청은 매년 30만개의 유동광고물을 단속하고 200개 정도의 고정광고물을 정비했다. 이에 따른 3년간의 과태료 부과액이 6억원대를 훌쩍 넘었다.
사정은 서북구청이 더 심하다. 매년 40만개 넘는 유동광고물을 적발하고 130개 정도의 고정광고물을 단속한다. 3년간의 부과액이 12억원을 넘겼다.
현재 동남구청에서 관리하는 현수막게시대는 56개소 470면, 벽보게시판 21개소 464면에 이른다. 동남구청의 김재일 도시미관팀장은 “사람이 많은 곳, 이를테면 터미널이나 역말오거리, 신방동, 통정지구, 톨게이트 사거리 등이 불법현수막의 온상”이라며 이곳들을 중심으로 단속업무에 임하고 있음을 알렸다.
동남구청은 ‘부서별 책임분담노선’을 지정·운영하기도 한다. “8개과에서 9개노선을 단속하고 있으며, 주말에도 서너명씩 단속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규모가 더 큰 서북구청은 불법광고물 난립이 더욱 심한 상황. 이에 부서별 책임분담노선을 정하고 읍면동은 자체정비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주말이나 야간에는 경찰, 천안시광고협회와 합동단속도 벌인다.
명함형 전단지 살포를 막고 대포폰 사용자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에 단속을 의뢰한다. 자원봉사자나 아르바이트 학생, 공공근로 등이 참여해 정비하고 있으며 상가번영회 등 각종 자생단체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한다. 더불어 단속위주만이 아닌 현수막게시대 확충노력을 통해 광고수요를 충족시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서북구는 최근 새로운 형태의 ‘단속방식’을 도입했다. 가로수, 전봇대 등에 불법유동 광고물 난립으로 도시미관과 교통안전을 해치는 시민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속에 민간인 참여를 끌어들이기로 한 것.
서북구청 도시건축과 이지선씨는 “기존 행정기관 주도에서 민간주도의 불법광고물 정비에 총력을 기울여가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1년 365일 상시 불법유동광고물 정비·단속을 실시하고, 읍면동별로 13개 불법유동광고물 주민자율감시단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서북구청은 5개 민간단체와 MOU를 체결해 민간자율정비구역을 지정·운영하며, 13명의 생활공감정책 모니터 운영, 113명의 공무원 모니터단 운영 등 민간신고망 구축과 참여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또한 생활불편 스마트폰 신고앱 시스템을 활용해 실시간 정보공유 및 공개를 병행하여 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이같은 계획을 세운 서북구청은 6월30일까지 사전계고기간을 운영하고 대시민 홍보를 가진 후, 7월1일부터 불법유해광고물 정비를 본격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지선씨는 “기존 행정기관 주도에서 민간단체와 시민의 자율적인 참여와 신고, 활동을 통해 정비단속 뿐 아니라 시민 스스로 캠페인화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간단체 참여방식은 동남구청도 각 읍면동에 참여접수를 공지하는 등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한편 민간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거보상제’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상황으로, 이에 대한 통과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간수거보상제가 시도되면 거리 곳곳에 나부끼는 불법현수막과 유동광고물에 대한 민간차원의 수거경쟁이 치열해질 테고, 그에 따라 거리곳곳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기 때문이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