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는 ‘불당동(佛堂洞)’이라는 곳이 있다. 옛날에는 이곳이 풀무를 닮았다고 풀뭇골이라 했는데 이후 불뭇골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서당리(書堂里)와 병합되면서 불당리(佛堂里), 현재는 불당동이 됐다.
불당동의 생김새를 보면 정말 풀무같이 생겼다. 그래서일까. ‘불당마을축제’나 ‘저녁산책음악회’ 등 자발적인 주민문화를 싹틔우는 곳도 천안에서는 이곳이 처음. 풀무를 닮은 불당동이 주민들의 열정을 뜨겁게 달구고 있나 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허경미(회장), 김영주, 박미현, 이지현, 서송옥, 이양자, 류미영, 최정자, 송미자. 이들 9명이 현재 정회원이며, 최근 두명이 신입회원으로 가입한 상태다.
무한도전 첫회 ‘황소와 인간 줄다리기’가 방영된 2004년 4월23일. 그날 누구도 10년을 버틸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이들의 10주년을 보며, 또다른 10주년을 맞이하는 천안 불당동 사람들이 있어 반갑다. 바로 ‘줌마씨네마’.
“가볍게, 아주 가볍게 시작한 우리가 1년도 아니고, 10년을 넘기다니요. 우리조차 놀랄 일이네요. 정말 별 것 아닌 모임이, 이젠 ‘별 것’이 돼버렸어요.”
이들을 보면서 언뜻 줌마렐라가 생각난다. 아줌마의 ‘줌마’와 신데렐라의 ‘렐라’ 합성어. <적극적인 성향에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아줌마지만 신데렐라처럼 아름답고 진취적인 기혼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젊은 아줌마를 뜻하는 ‘미시’와는 달리 가정과 육아경험이 풍부한 3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일컫는 말. 10년이 지난 이들의 평균나이가 40대 중반이니 줌마렐라와 맞닿아 떨어진다. 10년 전, 줌마렐라의 줌마가 씨네마를 만난 것이다.
농촌부락이던 불당동이 개발바람이 분 것은 2000년대 초반. 하룻밤 새에도 아파트단지가 우후죽순 솟아났다. 이들 아파트에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된 건 2004년경.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낯선 곳에 둥지를 튼 이들에게 ‘외로움’은 풀어야 할 또다른 숙제. 불당마을은 ‘불당축제’다 뭐다 해서 새로운 아파트문화 형성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런 속에서 허경미(52)씨도 하나의 영화모임을 이끌게 됐다.
“화성시에서 살 때 애들 학교 자모회에서 영화동아리를 운영했었거든요. 그때 경험을 살려 여기서도 시도해 본 거죠.”
그렇게 모인 멤버들이 김난순, 서동숙, 윤순옥, 노순자 등 5명. 모두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던 아이의 같은 반 학부모들이었다.
매월 첫째주 금요일 오전 9시는 조조영화를 보는 날로 못박았다. 이후 들락날락 하면서 평균 예닐곱명이 유지됐고, 많을땐 11명까지 함께 했다. 영화는 이들이 즐겁게 모이는 중요수단일 뿐 영화 자체에 우선권을 두진 않았지만 영화보기는 즐거운 일.
영화관 앞에 서면 각자 영화를 선택한다. 멀티플렉스영화관의 특성은 각자의 취향대로 볼 수 있다는 것. 어차피 영화볼땐 옆사람이 필요없다. “난 그거 봤으니까 다른 것 볼 테야.” “액션은 싫어. 오늘도 로맨스 쪽을 사수하겠습니다.” “그거 애아빠가 보지 말랬는데, 재미없다고.” 한편의 영화를 함께 볼때도 있지만 어느땐 세 곳으로 나뉘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본 후 이들에겐 또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것. 거기서 줌마들의 온갖 ‘즐거운 수다’가 꽃을 피운다. 주제는 무궁무진. 영화이야기도 하고, 자녀문제, 취미생활, 관심가질 만한 최근의 따끈따끈한 정보들을 공유한다.
류미영(45)씨는 회비 2만원이면 이 모든 게 가능하다고 했다.
“보세요. 모닝커피 한 잔에 4000원쯤 잡고 조조영화비 6000원, 그리고 맛난 점심식사비로 1만원이면 충분하거든요.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면서 갖는 한두시간의 수다는 공짜로 제공되는 서비스고요.”
이들은 지난 6월11일 정오 불당동의 한 음식점에서 ‘10주년 기념모임’을 가졌다. 정회원은 10명이지만 그간 모임에 발을 들여놨던 사람들이 거의 참석해 30명이 됐고, 예닐곱명은 모임에 관심을 갖고 이날 참석했다. 40명 가까운 여성주부들, 거기엔 청일점이 없었다.
3시간 가까운 모임이 끝날 무렵, 허경미 회장이 귀띔한다.
“누가 다녀가신지 아세요? 구본영 시장님이 격려해주고 가셨어요. (우리에겐)너무 멋졌습니다. 생활속의 작은 문화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가 하고 있는 줌마씨네마도 바로 문화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