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는 직산의 수헐원에 들렀다가 동쪽의 성거산을 바라보니 오색이 영롱하여 그 아름다움을 보고 영험한 산이라 여겨 제사를 지내도록 했으며 성스러움이 거(居)하는 산이라 하여 성거산(聖居山)이라 칭했다고 한다.>
태조산에서 능선 따라 성거산을 타기도 하지만 천흥저수지에서 출발하는 성거산행.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는 천흥저수지 둑방길을 따라 만일사로 오르는 길, 저수지에서 한가로이 낚시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천흥저수지에서 만일사까지는 2킬로미터 넘는 아스팔트. 지나는 차들이 없고 오가는 사람도 없어 걷기에 편안하다.
천흥계곡이 있다 보니 수십미터 간격마다 설치돼 있는 간이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금방 청소부가 다녀간 듯 깨끗하다. 또한 음용수 시설도 있는데 고장이 났는지 잠궈놨는지 수도꼭지에 물한방울 나올 기미가 없다.
시원한 산그늘과 쫄쫄쫄 흐르는 물, 천안의 으뜸하천이 광덕하천과 북면하천이라면 으뜸계곡은 목천 유왕골 계곡과 더불어 여기 성거 천흥계곡이 아닐까 싶다.
산위로 오르며 점점 풍경이 변한다. 바람도 달라지고, 햇볕의 음영도 점차 진해진다.
초록의 나뭇잎과 진고동의 나무색, 속살 내비치는 투명한 물도 모두 ‘검은색’을 띤다. 뿌리조차 하늘에 떠있는 곳에 이르러서 ‘천공의 성 나퓨타’처럼 그같은 세계를 잠시 엿본다.
어느덧 만일사가 삐죽 모습을 드러낸다.
8부 능선에서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안고 있는 만일사. 사원이 개창된 시기는 고려 목종(944년) 때이며, 1876년(고종13년)에 중건하고 1902년 새롭게 개축했다고 전해진다.
성거산은 천안의 모산이자 천년고찰, 만일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만일사에는 총 5개의 문화재가 있는데 법당, 5층석탑, 마애불, 석불좌상, 금동불이 그것이다. 만일사 마애불(문화재자료255)은 백학이 조각했다 해서 더욱 유명하다.
사찰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의 맑은 소리는 사욕을 없애준다. 하늘이 맞닿아 있는 절간. 문득 스님들은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사 한 켠으로 비켜 성거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풍경이 바뀌면서, 비로소 산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바위 찢어진 틈에서 풀이 자란다. 바위의 강건한 자양분을 독차지하고, 절대 꺾이지 않는 풀잎을 만들어낸다.
천안에서는 광덕산(699m)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산인 성거산(579m).
산 정상부를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950m이고 성 안 면적은 5700㎡이다. 성거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모여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앞에서 천호지(일명 안서호)를 이룬다.
‘정상정복’을 하고 내려가는 길은 몸과 마음이 완전 비어 발걸음이 가볍다. 먹을 것조차 줄어든 가방은 또한 얼마나 가벼운가!
올라갈 때와 달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천흥계곡. 아직 피서철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곳곳에 사람냄새가 배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