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공동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천안시는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고 시의 조사수준으로 시비를 가리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천안시 국악단 성희롱·성추행 사건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촉구 충남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3월25일 10시30분 천안시청 브리핑실을 찾았다. 충남공동대책위원회는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천안여성회, 천안여성의전화, 천안아산경실련, 천안KYC, 전국농민회충남도연맹,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노동당충남도당, 충남비정규지원센터, 충남노동인권센터가 함께 했다.
이들의 주장은 천안시국악단에서 벌어진 주모 예술감독의 성희롱·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진상조사·책임자처벌·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고, 더불어 천안시가 성희롱피해자들에게 경고장을 발부한 것을 규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안시는 ‘성희롱·성추행이 있었다’는 데에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익명의 피해사실만 주장하는 쪽지를 갖고서는 진상조사에 한계가 있고, 상대방(주모 예술감독)도 ‘법에 저촉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어서 책임자처벌도, 재발방지대책도 어렵다. 또한 경고장 문제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내린 조치였다고 밝혔다.
공동대책위는 성희롱·성추행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처벌을 주장하고 있고, 시행정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성희롱·성추행에 유죄를 단정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 뚜렷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충남공동대책위 ‘책임자 처벌해야’
충남공동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언론보도된 국악단 예술감독의 성희롱·성추행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고 했으며 ‘성희롱 피해자에게 경고장을 발부한 천안시의 반여성적 행정에 분노한다’고 했다. 그들의 행위는 언론보도를 전제로 한 것임을 먼저 밝혔다.
‘천안시 성희롱예방지침 제9조1항’을 언급,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는 자에게 불이익을 줬다고도 비판했다. 그들이 더욱 심각하게 여기는 건 재발방지대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내부감사가 진행중임에도 국악단 예술감독의 사직서를 수리해 면죄부를 줬고, 성희롱 발생이 확인된 경우 지체없이 징계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천안시는 감사결과에 따른 징계나 그밖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2월12일 성추행 고발기자회견에 사전동의를 구했음에도 천안시는 ‘무단이탈’했다며 복무규정을 악용, 성희롱피해자를 포함한 단원 18명에게 경고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이를 탄압으로 규정했다. 여성발전기본법 제17조 2항(성희롱의 방지)을 들어 ‘성희롱 피해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하면 관련자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천안시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국가인권위 진정결과가 나올 때까지 면담할 수 없다’는 시측입장에 “무책임한 자세를 일관하며 침묵·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전국의 여성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법률적 투쟁을 포함한 규탄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천안시 ‘아직 시시비비 모호’
성추행 기자회견 후 기자들의 요구에 의해 시청측이 해명에 나섰다.
이에 대해 천안시 입장은 단호하다. 죄의 유무가 확실해야 행정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가 파악한 바로는 아직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며, 성희롱·성추행 등의 증거도 익명으로만 주장돼 있을 뿐 시 자체감사로는 뚜렷하게 밝혀낼 수 없음을 인정했다.
다행히 현재 시립예술단노조측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의뢰를 해놓은 상황에서 결과를 지켜보고 적합한 행정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머지않아 진실에 접근된 결과가 도출되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시측은 그간의 과정도 상세히 전했다. 시에 따르면 박남주 시의원으로부터 접수된 바, 문제의식을 가진 구 시장은 일단 예술감독의 사표를 종용·수리할 것을 관계부서에 지시했다. 그런 와중에 비노조측 단원들이 예술감독을 두둔하고 나섰다. 한 관계자는 “국악단 창립부터 지금까지 25년을 지내온 예술감독으로 저는 그같은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며 “제자들과 싸워서 서로 상처만 되고 결국 국악단 위상만 깎이는 일이 되지 않겠냐며 조용히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사퇴 직전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해당부서인 문화관광과에서도 다급히 조사해봤지만 이렇다할 입증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감사관이 나서 무작위 20명의 단원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지만 또다시 진전이 없었음을 인정했다. 감사관측은 “문제시된 내용들이 모두 익명이었고, 노조측이 신분노출을 우려해 피해자를 알려주지도 않았다”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원들은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사람들과 없었다는 사람들로 갈리는 주장(의견)만 있었을 뿐”이라고 전했다. 수사기관도 아닌 감사관이 자체조사로 밝혀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감사관이나 문화관광과는 “유무를 밝혀내기에는 좀더 전문적인 곳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추행 문제는 오히려 여성가족과나, 아예 담당기관(검·경)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측은 ‘예술감독이 사표를 내고 시가 수리한 것은 죄를 인정하는 근거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대되고 시에서도 문제시하면서 예술감독이 “떳떳하지만 논란의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퇴했기에 ‘죄를 인정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는 시시비비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한쪽을 문제삼는 것은 오히려 ‘행정적인 편파’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성희롱피해자에 경고장 발부 운운은 오히려 시가 할 말이 많다. 경고장을 내린 18명은 한꺼번에 출근하지 않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절차가 무시됐다. 기자회견 때문인 점을 알고 사유서라도 받으려했지만 그조차도 거절했다. 이준호 팀장은 “그정도라면 실제 더 큰 징계를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경고장으로 그친 것조차 배려였음을 알아달라고 해명했다.
신속보다 정확한 처리 필요해
시립예술단노조측과 충남공동대책위측은 “죄가 있으니 응당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천안시 입장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천안시장도 새누리당에서 새민주연합으로 교체된 마당에 기존의 잘못된 행태를 두둔할 이유가 없다. 박남주 의원과 피해자(노조)측의 주장 만으로 구본영 시장이 그들의 뜻대로 예술감독의 사퇴를 종용한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피해자측은 상대방의 단죄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또한 깊이있는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행정적인 조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단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의뢰했고, 또한 양측이 언제든 법적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섣불리 ‘결과조치’를 취한 후 그에 대한 시비를 또다시 가려야 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시의 입장. 진실은 드러나는 법, 시는 시간을 갖되 문제를 정확히 풀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