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말했다. “대사의 모습이 마치 돼지 같구려.”
이에 무학대사가 화답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 설마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이겠는가. 무학대사는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는 이성계의 선입견을 비판한 것이다.
3월7일 목천읍 용연저주지 옆 아트스페이스 구운돌에 ‘I AM a PIG(나는 돼지다)’라는 기획초대전이 내걸렸다. 구운돌의 주인, 임양환(상명대 사진학과) 교수의 제자, 백부현(44)씨의 작품전시회다.
돼지를 모델로 사진작업을 시작한 건 3년 전. 하지만 돼지작품전이 나오기까지는 수십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내겐 돼지를 작품화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임 교수 말처럼, 백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친근한 돼지였기에 작품이 가능했다.
그의 집은 전의. 그곳에서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는 돼지농장을 운영했다. 백 작가의 어렸을 적 기억은 온통 ‘돼지’와 함께 한 것들이다. 매일 접하고 그들의 행동거지를 관찰하며 살다보니 돼지의 희로애락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 나이를 먹고 사진작가가 된 그에게 돼지는 무엇보다 좋은 소재거리가 돼주었다.
“돼지의 눈을 보면 그가 슬픈지 기쁜지 즐거운지 화났는지를 알 것 같다. 그들도 자신들의 감정을 여러 경로로 표현하며, 특히 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백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돼지의 눈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돼지의 눈 속에 카메라를 들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꿈꾸는 것이 내 의지인가, 아님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내가 꿈꾸는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생각은 더욱 번져나가 ‘자본주의가 자기의지가 아닌 시스템에 따른 의지가 아닐까?’ 생각이 미쳤다. 영화 ‘13층’이 그랬고, ‘매트릭스’가 그랬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이 세상 저편의 세상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모를 가상현실을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그가 사진작업을 하며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작품 속 돼지 24마리는 작품전시회가 내걸린 7일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사체로 남아있다.
“24마리 저들의 눈이 다 다릅니다. 어떤 돼지는 즐거워하는 표정을 짓고, 또다른 표정은 뭔가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이쪽으로 와보세요. 이 작품은 사진에 굉장히 슬픈 감정이 담겨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덩달아 아파지는 사진이죠.”
작품 한 장을 위해 1000컷 정도씩 찍었다는 작가의 집요함이 그의 사진기술과 함께 작품수준을 높였다. 임양환 교수도 “수준이 높다”고 인정했고, 이날 참석했던 방일원 천안사진작가협회장 또한 “돼지의 감정이 그들의 눈빛에 잘 투영돼 있는 좋은 작품전”이라고 평가했다.
작품전은 오는 3월28일까지 구운돌에서 볼 수 있다.
문의: 010-9420-2628(목천읍 덕전리 390-23)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