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 J씨가 13일 스스로 사퇴했다. 그의 사퇴는 갑작스런 일로 받아들여진다. 적어도 지난 1월 중순 천안시립예술단노조(지부장 김규헌)이 박남주 시의원을 면담하기 전까진 평화로웠다. 그러나 2015년뿐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을 그의 임기는 노조측이 성추행·금품수수 등으로 문제를 삼자 ‘당당하지만 논란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노조측 기자회견 “성추행·금품수수 등”
2015년 2월12일 국악관현악단 일부가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노조에 가입된 사람들이었다.
연월차 및 임산부 출산휴가 사용통제, 여성인권 유린, 명절 금품수수 및 식사대접 강요, 공연티켓 강매, 단원들 개인사물함 사찰, 특정 정당지지 강요, 오디션 편파평가, 성희롱·성추행 및 여성단원에게 술접대 강요….
이들은 “예술감독의 탄압과 인권유린에 시달렸다며 저항 한번 못해보고 치욕스런 세월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또한 “2월 초순 구본영 시장을 면담해 이같은 국악단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천안시가 우리를 농락하고 기만했다”고 분노했다.
분노의 화살은 감사실로 향했다. 매우 편향적인 조사를 진행했고, 제보자 신분을 노출시켜 협박받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며 해당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하고 성추행 피해자 신분을 비노조원들에게 노출시킨 행정에 응당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며, 예술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천명했다.
감사관측 ‘신분노출 운운은 트집잡기’
이에 대해 천안시 감사관은 사실관계가 뒤죽박죽 엉켜있다며 난감해했다.
감사관에 따르면 2월9일 시장이 사실여부를 확인해보라는 언질을 받았다. 국악관현악단이 10일과 11일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오후 4시쯤 부랴부랴 단원들을 접촉했다. 한 관계자는 “몇몇 직원들이 20명 가까이 만났다”며 “그들 개개인이 원하는 시내 커피숍에서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했기에 우리로부터 정보노출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11일쯤 노조측이 감사관을 찾아와 항의할때 해명된 일이라고 전했다.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감사관 관계자는 “조사는 아직 진행중”임을 밝혔다. 이날 예술감독을 부르려 하니 사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도 했다. 알려지기로는 누군 노조측이 밝힌 부분을 말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노조측의 자료라는 것이 ‘했다더라’는 있지만 그 피해자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다. 감사관은 “우리가 수사기관도 아니고…,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조사하고 해당부서(문화관광과)에 의견제시 하는 정도로 일단락지으려 한다”고 밝혔다. 이후 피해당사자나 해당부서에서 문제여부를 갖고 검찰에 고발할 것인지 검토해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풀어야 할 숙제들
3년 전쯤 노조(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충남문화예술지부 천안시립예술단)가 만들어질 때도 이같은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었다. 노조측은 “수십년간 받아온 치욕스런 과거”라며 “예술감독은 평정을 이유로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을 야기했고 폭언과 협박, 인권침해, 이로 인한 집단따돌림과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지만 감히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노조가 결성되고서도 제1순위로 거론될 문제를 쉬쉬하고 있었을까. 이들이 단체협약에서 ‘예술감독과 단원들이 교차평정을 매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까지 주장해 왔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노조측은 예술감독이 평정을 이유로 전권을 넘어 월권을 행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2014년 11월 이뤄진 종합근무평정에서 교향악단 2명, 무용단 1명이 재위촉되지 못한 것과 연계돼 생각해볼 수 있다.
노조측은 최근 단원들이 부당 해촉을 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42명의 교향악단 가운데 2명, 10명의 무용단원 가운데 1명이 재위촉 불가통보를 받은 것이 예술감독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부당한 평정결과라는 것이다. 이들은 ‘노조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보복평정’이라고도 했다. 또한 단원들은 기간제보호법에 의거해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처럼 자동연장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천안시는 엄연히 조례상 2년마다 재위촉 여부를 결정하게 돼있고, 단원들도 그에 따라왔다며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술단원들은 기간제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그들이 말하는 예술의 특수성을 고려해 업무편의를 보장해주고 있는데, 예술인과 근로자의 장점만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내다봤다.
시립예술단원은 조례상 2년마다 개개인의 실력을 평가해 재위촉 여부를 진단한다. 그러나 그동안 재위촉되지 않은 단원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뭘까. 시 관계자는 “실제 실력이 안되는 단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형편을 고려해 위촉해주는 식으로 잘못 운영돼온 면이 있다”고 실토했다. 이같은 관례는 예술단노조를 만들면서 서로가 ‘원칙’과 ‘법’이라는 자대를 들이대며 ‘객관적인 운영’ 쪽으로 눈을 뜬 것이다. 문화관광과 이종명 문화예술팀장은 “앞으로는 심사나 법적관계를 명확히 살펴보고 조례상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좀 더 객관적인 평가 등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또한 “노조측이 말하는 ‘무기계약직 운운’하는 부분도 더이상 시비가 되지 않도록 법판단을 명확히 해놓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평정에 관여했던 한 심사위원은 노조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정확하게 평가했음을 강조했다. “천안시립예술단이 원하는 기준에 미달되는 단원은 없는지를 평가했고, 실력에 의한 급수도 정확히 매기려 노력했다”며 “이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계통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알아볼 정도로 실력차를 구분할 수 있으며, 문제가 된다면 검증절차를 밟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고 자신했다.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온 시립예술단은 일부 단원들이 노조를 결성하면서 시행정과 갈등을 빚어오고 있다. ‘주먹구구식’이 ‘명확한 법과 원칙’을 기준으로 객관적인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오해와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 권리에 앞서 의무가 따라야 하며, 단원과 감독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존중돼야 할 때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