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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찻잔을 보라

천안시인회 스무번째 시화집 ‘아주 작은 얼룩’ 출간

등록일 2015년02월1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권복례·이병석·한정찬·정덕채·한정순·유 희 9명으로 구성된 ‘천안시인회’가 스무번째 사화집 ‘아주 작은 얼룩’을 펴냈다. 이번 사화집에는 아쉽게도 권상기·윤여홍·한성우가 빠졌다. 펴낸날은 2014년 12월29일, 갓 한달이 지났다.

시화 전체에 흐르는 이미지는 맨 처음에 나선 권복례 시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쓴 ‘사랑의 흔적’에는 해묵은 찻잔이 등장한다. 찻잔은 남편과 자식들이 그간 숫하게 사용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찻잔은 커피도 담고, 녹차도 담고, 겨울철 감기기운이라도 있는 날엔 생강차도 담겼다. 그렇게 해묵은 찻잔은 수많은 찻잔과는 다른 정서를 배여문다. 흡사 사진첩 속의 이야기처럼….

해묵은 찻잔에 묻어있는 얼룩은/ 가족의 따뜻한 체온이다/ 이 세상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이다/ 오래된 찻잔에 묻어 있는/ 아주 적은 얼룩은

다음순서인 이병석은 그가 근무하는 재활병원의 실상을 관찰한 시가 눈에 띈다.

서있는 제가 행복합니다/ 앉아 있는 제가 행복합니다/ 누워 있는 제가 행복합니다…

삶이 때론 심드렁하다가도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 건 어떤 이치일까. 고장난 세면기 수도꼭지를 고치려다 낭패를 맛보기도 하면서 인생을 다시금 성찰하기도 한다.

육년육개월동안 눌어붙은 잠금쇠 틀쇠를/ 대체로 볼펜만 굴려먹고 살아온 내가/ 공구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내가/ 녹슬대로 녹슨 수도꼭지 고정틀쇠를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정덕채 또한 힘겨운 삶의 단상을 노래한다.

살아내는 일이나/ 꽃을 피우는 일이나/ 똥끝이 까맣게 타는 일이지…

한정순도 인생을 새끼 밥에 비유하며 한마디 거든다.

인생은 새끼 밥이다/ 내 어미 살결같은/ 노각을 배 갈라 썰어/ 무쳐놓으며/ 뭐하고 먹지?
뭐하고 살지?/ 늘 묻는 비위 상한 말/ 살면서 위안이 되지 못한 말/ 따뜻한 밥 한그릇 찾듯/ 인생은 새끼 밥에/ 어울리는 반찬을/ 찾는 일이다.


유 희는 유리창을 보며 슬며시 인생을 꺼내놓았다.

창밖 어둠은/ 깊은 거울이다/ 유리창에 반사되는/ 내 삶을 본다/ 유리창에 복제된 내가/ 어둠의 중심에 서있다/ 어둠을 의지하고 서있는/ 나는 허깨비다.

시의 가장 쉬운 소재는 ‘삶’이다. 그만큼 산다는 건 내가 늘 겪어내야 하는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삶을 조명하며 때론 조급하고, 때론 녹녹하게 그려낸다. 독자들은 당연히 그같은 삶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주 작은 얼룩은 사랑의 흔적이자 삶을 당당히 맞서싸운 투사의 생채기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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