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실에 일부 기자들이 상주하면서 갖가지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23일 오전 10시30분경, 임시회가 폐회됐다. 의원들과 공무원, 방청객들이 3층 대회의실에서 물밀 듯이 빠져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만원. 그 속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이제 이삿짐만 부르면 되겠구만.”
한 의원이 주변사람들 들으라는 듯 크지 않지만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상쾌한 표정이다. 그리고 또다른 공무원 무리. 한 간부의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좀 찝찝해.”
지난 22일 ‘천안시 시정홍보활성화를 위한 조례안’을 다룬 총무환경위원회(위원장 전종한) 전경.
이번 제181회 임시회에서 천안시의회(의장 주명식)가 언론환경 개선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의장이 대표발의자로 ‘천안시 시정홍보활성화를 위한 조례안’을 상정, 22명의 의원중 17명이 서명했다. 주명식(새정연) 의장과 안상국(새누리당) 부의장, 조강석(새정연) 의회운영위원장, 전종한(새정연) 총무환경위원장, 서경원(새누리당) 복지문화위원장, 주일원(새누리당) 건설도시위원장 등 의장단 전원이 참여했고, 정당도 여야 없이 일사분란한 합의가 이뤄졌다. 시정홍보활성화란 틀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최근 불거진 브리핑실 사용논란을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22일 총무환경위원회(위원장 전종한)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
김영수 의원은 "조례내용중 시장책무에서 시장이 주요 시정현안에 적극홍보하도록 하고 홍보계획까지 수립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자칫 치적 위주로 홍보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라며 "의회는 오히려 통제하는 쪽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견을 냈다. 정도희 의원도 가세해 "시가 해야 할 일을 왜 의회가 나서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상임위 통과는 어렵지 않았고, 다음날인 23일 본회의에서 이견 없이 최종 의결됐다.
조례의 핵심 ‘상시점유 금지’
조례는 시장의 책무를 밝혔다. 천안시장은 주요 시정현안에 관해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점과, 시정을 홍보함에 있어 효율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고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조례가 만들어진 취지는 브리핑실의 건전운영에 있다. 이런 이유로 조례는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적어놓고 있다. 브리핑실 활성화를 위해서는 천안시가 언론인을 상대로 정기 또는 수시로 활용해 브리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시장은 이용자나 언론인에게 브리핑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브리핑실 운영과 관련해 원칙도 명확하게 세웠다.
시장은 이용자나 언론인이 브리핑실을 상시점유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칸막이형 책상, 개인소유의 물건, 사적인 전화·팩스·컴퓨터 등 상시점유를 용이하게 하는 물품과 시설 등을 설치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현재 천안시에는 100곳이 넘는 언론사가 등록돼 출입하고 있으며, 이중 브리핑실에서 상시점유 형태로 10개 안팎의 언론사가 있다.
이들 기자들이 브리핑실을 상시점유하며 그들만의 사무실로 이용하는 등 부정적 행태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브리핑실의 운영조차 원활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또다른 언론인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상황.
논란이 점차 거세지고, 시의회가 나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의회는 바람직한 언론환경을 위해 ‘상시점유’는 안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례는 ‘상시점유’를 <브리핑실을 특정인이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물품 및 시설 등을 배타적으로 점유한 상태를 말한다>고 정의해 놓았다.
또한 시의회는 시행정의 시정홍보비 사용방식도 문제삼았다.
일부 언론과의 유착관계가 의심되면서 이번 조례를 통해 홍보비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11명 이내의 ‘천안시 시정홍보위원회’를 두고 여기서 연간 시정홍보에 관한 계획, 브리핑실 운영에 관한 사항, 지역언론 육성·지원시책, 시정홍보 등과 관련한 사항 등을 다루는 것으로 정했다. 구성면면은 위원장을 부시장으로 하며 시 국장급 1명, 시의원 2명, 지역언론인 2명, 시민단체 활동가 2명, 기타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 3명 이내, 간사(시 담당부서장)로 규정했다.
의회 “언론통제? 언론환경 개선으로 봐달라”
기자들이 자리를 꽉 채운 총무환경위원회. 대표발의한 주명식 의장을 대신해 주일원 의원이 관련조례를 설명하고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처음 브리핑실 사용을 놓고 기자들간 갈등이 커졌다. 브리핑실 한 켠에 20석 안팎의 칸막이형 자리를 두고 일부 기자들이 공간을 점유해 왔다.
그들은 그들만의 기자명단을 만들어 각 기관·단체에 배포하기도 하고, 시행정과의 특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외 80개 넘는 언론사 시청출입기자들의 불만이 쌓여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들은 구본영 시장에게까지 브리핑실의 시비를 가려 개선해줄 것을 건의했다.
천안시의회로 불똥이 튀자 마지못해 의회가 나섰다. 행정사무감사에서 의원들이 브리핑실 문제를 거론하자 전병욱 부시장과 조한수 공보관은 “기자들 스스로 해결할 문제”로 떠넘겼다.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자들간 다툼이 일고, 시는 나몰라라 하는 상황에서 의회가 그 건전성 여부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며 정치인이 언론인을 상대로 한다는게 민감하고 불편한 일이라 전제하면서도,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브리핑실이 올바로 운영되도록 힘쓰는 것은 의회의 본분이기도 하다"며 의회가 나서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브리핑실 한 켠에 변형된 일부 기자들의 운영행태는 이미 2005년 불당동 청사가 열리면서 첫단추가 잘못 꿰어진 바 있다.
당시 기자실은 폐쇄됐고, 대신 브리핑실이 마련됐을때 시는 일부 기자들이 사용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브리핑실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칸막이 책상을 두되 ‘상시점유’는 안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이후 기자들의 편의적 욕구가 커지며 시나브로 ‘상시점유’ 형태로 나타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의회는 몇 년 전부터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각 부서마다 받아보는 신문부수 등을 점검하며 언론사들의 행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제7대의회가 가동되며 2015년 예산안 심사에서 시행정이 받아보는 모든 신문부수를 절반으로 싹둑 삭감했다. 언론사들이 늘면서 각 부서마다 신문봐주기가 급증, 보지도 않는 신문이 쌓이고 그로인해 예산낭비가 심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의회는 의회대로 주먹구구식 해외연수, 의정비 인상 등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왔으며, 신문부수 삭감과 브리핑실 운영에 관여하고부터는 일부 언론사들의 노골적인 비판기사가 자주 실렸다. 의회직원들은 이를 두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불만을 드러냈고 시의원들은 감수해야 할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한 의원은 “기득권을 잃게 된 브리핑실 언론인들이 가만히 있는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며 “예전 10여개 언론사가 활동하던 때와 달리 100개 넘는 언론사들이 출입하는 상황에서 언론환경도 좀 더 전체를 위한 바람직한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전했다.
언론환경 개선에 강한 의지를 표명한 주명식 의장은 일부 언론들의 언론통제 운운하는 것에 “불필요한 오해”라며 “지금껏 그래왔듯 천안시의회는 언론의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는 항상 겸허하게 듣겠다”고 밝혔다. 주 의장은 “조례안은 천안시의 향후 시정홍보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지역사회 언론환경 조성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천안시공무원노동조합도 브리핑실 운영방식에 대해 1016명의 공무원으로부터 의미있는 설문조사를 벌인 바 있다. 여기서 압도적인 73%가 브리핑이 필요할 때만 운영하길 희망했다.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올해 1월23일 “천안시 브리핑실은 모든 시민과 언론사에 자유롭게 개방된 소통공간이 돼야 한다”며 조례안이 마련된 것을 환영했다.
[논평] 천안시 시정홍보 활성화 조례에 대한 경실련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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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브리핑실은 모든 시민과 언론사에 자유롭게 개방된 소통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시청 1층에 개방형 브리핑실을 제안한다.
천안시의회는 이번 제180회 임시회에서 ‘천안시 시정홍보 활성화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례안은 22명의 천안시의회 의원 중 주명식 의원 등 17명의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시정홍보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한 ‘천안시 시정홍보 위원회’ 설치와, ‘브리핑실 운영’에 관한 원칙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용은 위원회를 통하여 시정홍보, 특히 언론광고의 비용을 배분하는 것과 브리핑실을 특정 언론사가 상시적으로 점유하여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지역의 언론사가 행정소송까지 진행할 정도로 갈등이 심화되어왔던 문제로 천안시가 2005년 시청 이전 이후 10년동안 변화하는 언론사 환경에도 불구하고 브리핑실 운영과 언론 홍보 배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나 관리 방안, 매뉴얼 등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방치하여 온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천안시는 조례가 통과된 만큼 조례의 입법취지에 맞게 실질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브리핑실 운영과 사용에 관한 세부규정 등을 조속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천안시 브리핑실은 결코 행정부를 위한 공간도, 언론사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시정 홍보의 대상도 시민이며, 소통의 대상도 시민이다. 따라서 천안시민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접근이 용이하며, 직접적인 쌍방향 소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시청 1층에 개방형 브리핑실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2015년 1월 23일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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