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다리를 번갈아 떼어 내딛으며 몸을 옮겨 나아가다> ‘걷다’의 사전적 의미다.
40대 이상만 되도 어릴적 하루 2만보는 너끈히 걸어다녔다. 보통 초등학교도 4~5㎞는 걸어야 했으니 아침 걷기부터 시작해 저녁 걷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걷는 것은 별다른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 한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린 걷는 것이 어려워졌을까. 만보기를 착용한 현대인들에게 형편을 보면 ‘2000보’ 수준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500보 내외에서 멈춘 만보기 숫자를 보게 된다. 몸이 뚱뚱해진 닭은 결국 날지 못하는 새로 살아간다. 걷지 않는 사람들 또한 점점 비대해진 몸을 보면서, 그로 인한 건강의 적신호를 하루하루 통보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거친산행 힘들어 '걷는모임 개설'
닉네임 불나방을 쓰는 유병국 회장(좌)과 포비 안신용씨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길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정해진 시간도 장소도 없으니까요. 걷다 힘들면 쉬고, 다시 걸으면 됩니다. 걷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천안에서 걷기(트레킹)모임을 찾는다면 대표적인 곳이 ‘유유자적-천안’일 것이다. 유유자적이 만들어진 건 2010년 1월1일, 20명 안팎의 사람들이 ‘문경세재 과거길’로 첫 트레킹을 떠나면서 시작됐으며 5년 후인 지금 100배로 늘어난 1932명이 인터넷 다음카페 회원수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24일(수) 유유자적의 일등공신, 유병국(46·불나방) 회장과 안신용(46·포비) 카페지기를 구성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들의 ‘통통’한 몸집에서 유유자적의 탄생비화를 읽어낼 수 있었다.
“산행을 따라다니면 맨 뒤에 처지는게 우리이고, 정상에서 한참을 기다려 주는 그들 입장에서 우리는 민폐였습니다. 시간 구애 안받고 걷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고 꿈이었습니다.”
카페지기 닉네임 포비의 말이다. 단짝친구인 불나방과 다음카페를 열자 소식을 듣고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행이 버거운 사람들과,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기 시작한 트레킹의 참맛을 보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그렇게 매월 넷째주 일요일은 전국적인 트레킹여행이 시작됐다.
흥타령길탐사대 ‘지역 속으로’
천안의 바깥지역을 다니던 트레킹은 5개월 후 ‘관내 트레킹’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평일 가까운 데서도 걸어보자는 요구가 늘자 이들은 2010년 6월부터 ‘태조산행’을 만들었다. 매일 8시30분 태조산 청송사 앞에서 만나 야간산행을 시작했다.
“적을땐 너댓명일 때도 있고, 많을땐 20여명에 이르기도 합니다.” 인기가 높아가자 쌍용동 인근회원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굳이 태조산만 탈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도 그렇다. 2011년 9월 다시 ‘봉서산행’을 개설했다. 독점적인 단순산행에서 어느덧 선택산행으로 회원들의 트레킹 여건이 좋아졌다.
불나방과 포비의 욕심이었을까. 2010년 9월, 야심찬 ‘흥타령길 탐사대’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트레킹은 반드시 산이 아니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어요. 좁은 둑길도 나름대로 걷는 맛이 있고, 푸석한 밭길도 재미있을 겁니다. 덤으로 천안지리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애향민이 될 수 있는 계기도 될 겁니다. 그래서 탐사대를 조직하게 됐습니다.”
불나방은 유유자적의 정체성을 ‘탐사대’에서 찾았다. 전국을 트레킹하거나 관내 산행은 이미 일반적인 현상 아닌가 말이다. 그와 비교해 지역탐사대는 흔치 않은 활동이자 보람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흥타령길 탐사대는 지금까지 80여회의 길을 떠났다. 한달에 한두번 주말을 이용해 비정기적으로 출발지점을 정했다. 2010년 9월19일 ‘천안삼거리 둘레길(8㎞)’로 첫걸음을 뗀 탐사대는 이후 북면 코스모스길, 풍세길, 병천 유관순길 등 헤아릴 수 없는 트레킹 관로를 개척했다.
한번은 두정역에서 성환역까지 코스를 잡았는데 논둑길과 철길 등 다양한 길을 통과하며 5시간을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성환시장에서 순대국밥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되돌아오는 길, 전철을 타니 단 5분만에 출발지점에 복귀하니 허탈한 마음까지 들더라는 것이다.
“5시간 거리를 5분에 왔으니 어떻겠습니까.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빠름만 알았지 느림의 미학을 까먹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5시간 걸으면서 보고 들은 게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걷지 않으면 결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시간이었죠.”
이번에는 포비(약간 미래소년 코난의 친구 코비를 닮았음)가 탐사대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말했다.
탐사대는 그간 코스중에 가장 뛰어난 길로 ‘흑성산 둘레길’을 추천한다. 둘레길은 대략 독립기념관, 국학원, 용연저수지(갤러리 구운돌), 청소년야영장, 이동녕생가를 끼고 있다.
“시가 조금만 나서서 정비하면 흑성산 둘레길이 가능할 겁니다. 사람들이 문화·예술·먹을거리가 있는 둘레길로 모여들면 그 주변상권도 활기를 찾고 관광산업으로의 확대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불나방과 포비는 ‘흑성산 둘레길’의 성공을 자신한다.
내년엔 도심속 트레킹 도전
유유자적은 트레킹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걷는 재미를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고 함께 하길 바란다. 참여자(회원수)가 5년만에 100배로 늘었지만 그래봐야 천안인구 65만명중에 2000명 정도밖에 안되질 않는가.
“관광버스로 전국트레킹을 하고 자가용으로 가까운 관내 산행을 한다면, 이젠 집앞에서 출발해 다시 집앞으로 오는 순환코스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 길이 재미있게 펼쳐져 있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길로 뛰쳐나오지 않겠습니까.”
불나방과 포비의 눈빛에서 또다른 열정이 엿보인다.
예로들어 남산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면 어떨까.
남산공원과 그 주변의 호젓함을 즐기며 재래시장으로 들어서면 맛난 호떡과 어묵이 반긴다.
주전부리를 잠깐 하고 벽화골목인 미나리길을 구경한다. 다시 재래시장을 통해 잿백이로 넘어가면 명동골목과 맞닿고, 지하상가를 거쳐 공설시장으로 넘어간다. 공설시장에 다다라 출출해지면 3000원이면 해결되는 맛있는 짜장면과 순대국밥, 칼국수가 있다.
거기서 신부동 먹자골목으로 가든가 중앙도서관, 천안제일고, 남산초, 고추전, 남파오거리를 통해 남산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잡으면 ‘도심둘레길’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면 포토존과 멋거리, 맛거리가 더욱 생겨나고 천안시는 둘레길 곳곳을 아름답고 안전하게 정비하는데 힘쏟을 것이 틀림없다.
“도심공간은 곳곳이 미로이고 건널목인데 아직 트레킹코스로 개발된 곳이 없어 아쉽습니다. 용곡동 산책로라든가 천안천·원성천변길도 생겨났고 시도 안전한 보행길 확보에 노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유자적 회원들 1900여명이 각자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크고 작은 트레킹 코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겁니다.”
유유자적-천안의 회장 불나방(유병국)은 “시가 도심트레킹길 조성을 위해 용역발주해도 좋을 듯하다”는 말로, 또한 포비(안신용)는 “우리가 개발하고 닦아놓은 길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명품길이 될 수 있도록 꿈을 갖고 노력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커피숍을 나왔다.
유유자적-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