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부터 마을을 수호하던 버드나무가 갑자기 시름시름 앓는다. 예전같지 않게 가지도 축 늘어지고 듬성듬성 나는 잎사귀. 버드나무는 마을의 자존심이다. 터를 지켜온 생명줄이다. 그런 버드나무를 무엇이 병들게 하는가.
환경오염 지켜낸 마을이야기
천안의 ‘(사)벽옥두예술단(이사장 곽상용)’이 풍물뮤지컬 ‘방죽골 왕버드나무가 살아났슈!’를 공연한다. 환경부와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9개월간의 준비 끝에 한편의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지난 10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공주문예회관과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선보인 이 풍물극은 12월23일 오후 7시30분 천안시청 봉서홀에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방죽골 버드나무는 1975년 국토건설이 한창이던 시절, 도로길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이를 봉구 아버지가 목숨으로 지켜냈다. 그런 이후 마을주민을 지키며 잘 생장하던 버드나무는 봉구가 고향을 떠나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1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봉구. 그 앞에 서있는 버드나무는 환경오염에 시달려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내며 죽어가고 있었다.
작품은 이렇듯 봉구를 주인공으로 한 어느 작은 마을의 환경문제를 다뤘다. 왕버드나무를 그저 나이 많은 한그루의 나무로 볼 것인가, 아니면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나무이기에 결국 사람들도 나무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마을공동체’적 상징물로 볼 것인가. 작품내용은 언뜻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상된다. 전쟁으로 인한 지구황폐화. 거기에 사람들의 갈등으로 지구멸망으로 치닫는 내용은 방죽골 마을과 다를 바 없다.
작품 대본을 쓴 사람은 벽옥두 예술단의 이명숙 단장이다. 국문학과 출신의 그는 2011년 ‘하늘꽃을 찾아서’에 이어 이번 환경풍물극 ‘방죽골 왕버드나무가 살아났슈!’를 후속작품으로 써냈다.
단장 덕에 벽옥두예술단과 민족굿패 얼 단원들은 생전 해본적 없는 ‘배우’로서의 꿈을 펼치게 됐다. 2년전 작품 ‘하늘꽃을 찾아서’는 260석 규모의 공연장을 빌렸으나, 이번 작품은 1000석의 천안 봉서홀이라 부담은 그에 비례한다.
“매일같이 모이고 연습합니다. 큰 무대이니만큼 제대로 연습하지 않고는 답이 없어요.”
그간 천안에서의 풍물은 사물놀이 중심이었다. 흥타령춤축제같은 대규모축제나 그 외 크고 작은 행사에서 풍물굿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연극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생소한 일. 연기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라서 ‘발연기’조차 힘겨운 단원들의 노력이대견하다.
풍물극의 진짜 재미는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삽입돼 펼쳐지는 공연에 있다. 벽옥두예술단의 신명나는 풍물놀이는 물론 서도소리, 도살풀이도 있다. 정점에서 곽상용 대표가 직접 나선 비나리 공연은 관객들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이끌며, 이명숙 단장 또한 설장구로 흥을 이어간다.
50명 가까운 출연진들은 말한다. “봉서홀에서 풍물극은 처음일 거예요. 실험작이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봉서홀에 찾아주시면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