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도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9월 초순이었다. 국어교사였던 그는 당시 명예퇴임한 직후였다. 교육자로 살아온 31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한명의 시인이자 아동문학가로, 또한 청소년교육에 관심많은 퇴역교사로 ‘진행형’의 삶을 살고싶다는 바람을 드러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지난 11월28일, 그가 사는 안서동의 한 아파트단지 인근 순두부집에서였다. 예전보다 더 ‘쌩쌩’한 모습 속에 원하는 삶을 살고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집에서 여름은 혼자 살았을까?
“이번에 시집을 냈어요.”
책이 따끈따끈하다. 발행처는 청소년들에게 책선물사업을 펼치고 있는 작은숲출판사로, 발행일을 보니 2014년 11월10일. 아직 서점에도 다 깔리지 않았을 거라며 사인이 선명히 찍힌 시집을 건넨다.
‘공묵의 처’. 제목을 보자 하니 오래 전 ‘백수광부의 처’가 지었다는 고대가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생각난다.
이번 시집은 그의 아홉번째 작품이다. ‘그 나라’, ‘백제시편’, ‘좋은날에 우는 사람’, ‘사랑한다면’ 등. 그렇다고 그를 시인으로만 보면 착각이다. ‘오리와 참매의 평화’, ‘불량아이들’, ‘싸움닭 샤모’ 등 아동문학가로도 활발하다.
이번 시집 ‘공묵의 처’는 학교를 그만 둔 후에 낸 첫 시집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인 권덕하씨는 “자본의 논리와 목적에 따라 모든 존재자들을 상품화하거나 서로의 관계를 끊어 사뭇 외로움에 휩쓸리게 하는 현실에서 시인은 외로움의 정황과 현실을 드러내는 일에서 멈추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이를 잘 표현해낸 시가 ‘사막’이다.
<사막에 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물이 없는 만큼 있을 뿐이다/ 그 없는 만큼 있을 뿐인 물 물기를/ 서로 빼앗아가는 사막/ …>
권씨는 ‘공묵의 처’가 그런 도정에서 출현한 존재의 노래라 했다. 존재자들이 함께 아름다울 수 있는데도 격절된 채 살아가는 것을 시인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공묵이 처를 맞아들였다/ 오래도록 같이 살아 공묵의 처는 공묵을 닮았다/ … / 공묵이 새벽에 일어나/ 줄넘기를 한다/ 공묵의 처도 줄넘기를 한다/ … / 성냥개비처럼 야위어가는 생에/ 둘도 야위어 문득 하나가 되었다/ 다른 길을 가면 다른 사람이 된다/ >
조재도 작가는 이전 여덟개의 시집과는 다른 시집임을 강조한다.
아이들 속에서 왁자지껄 부대끼며 살아온 교사로서의 삶에서 이젠 홀로 관조하는 그가 있을 뿐이다. 그런 고요 속에서 탄생한 시어들은 ‘무인경(無人境·사람이 없는 경계)’의 세계에서 가교역할을 자임한다. ‘꽃자리’, ‘원시성’, ‘새벽종소리’ 등이 이같은 무인경의 세계를 잘 담아내고 있다.
기자가 보기에는 ‘투명’이란 시도 그렇다.
<그곳엔 바람이 살데/ 바람이 울리는 풍경소리가 살데// 그곳엔 산수유나무가 살데/ 붉은 열매 톡 톡 쪼는 동박새가 살데// 고요가 살데/ 종소리의 여운 번지다 번지다 가라앉은 자리/ 빗방울처럼 고인 고요가 살데// …>
그러고 보면 결국은 우리 사람 사는 일이 ‘조화’를 빗겨갈 수 없다. 나무는 산소를 배출하지만, 사람은 산소를 먹고사는 대신 탄소를 뱉어낸다.
불과 물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요소지만 긍·부정이 함께 한다. 낮과 밤이 그렇고, 남자와 여자가 그렇다. 결국 인간은 그 경계점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가깝고도 먼 것이 사람관계다.
조재도 시인은 ‘공묵의 처’를 통해 그같은 이치를 이해하고 풀어보자는 숙제를 던져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