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트플랫폼 오픈식 공연무대에 한 색소폰연주자가 섰다. 그의 능숙한 대중가요 연주는 뭇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저 사람이 뭔데 저렇게 잘 부르는 거야?”
사람들의 찬사를 뒤로 하고 며칠 후 그의 연습실을 찾았다.
“찬찬히 보면 밤하늘에 별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일거야. 천안의 색소폰 인구가 얼마나 되냐구? 아마 별들처럼 많을 걸.”
통기타나 피아노 인구가 많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웬 색소폰! 깜짝 놀라는 기자에게 색소폰연주자 우명균(51)씨는 정색을 한다.
“제가 87년쯤에 색소폰 매력에 빠져 입문하게 됐는데, 그때는 색소폰 인구가 거의 없었던 때였죠. 그런데 이제는 엄청 늘었어요.”
명균씨는 김미선씨 말대로 ‘타고난 음악가’다. 일찍부터 기타는 기본이고 오르간, 베이스기타, 드럼을 잘 다뤘다. 그렇다고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한쪽 귀가 ‘뭉개져’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을 가진 레슬링 선수였다.
87년 어느날 색소폰 소리에 반하게 된 그는 다른 악기가 눈에 차지 않게 됐다. 그때부터 3년간 독학으로 배운 색소폰은 90년 우리나라 최고반열에 올라있던 김원용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분에게 1년뿐이 못배웠죠. 인연이 다 그런 거예요. 당시 상황이 그랬죠. 그러다 2001년도쯤 다시 스승을 만나 지금껏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08년 그의 스승 김원용 선생은 천안과 인연이 닿아 천안시청 봉서홀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천안의 색소폰 인구는 수천명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35만명쯤 된다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색소폰연주자가 많다보니 명균씨도 자신의 실력이 어떻다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다. 대신 그를 아는 사람들은 ‘최고수준’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한번 듣고 따라 연주할 수 있는 선천적 재능을 타고났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세운다. “색소폰이라 해서 다 같은 게 아니에요. 누구는 재즈에 강하나, 나처럼 팝이나 가요에 강한 연주자도 있죠.”
타향살이 하다 고향, 천안에 내려온지 15년. 이제 다들 알만도 한데 그는 “제 인지도는 묘한 곳에 있다”며 고개를 갸웃갸웃. 실력은 프로급으로 인정하는데, 대우는 그에 훨씬 못미치는 아마추어 취급이 가끔 서러울 때도 있다.
“연주실력을 무슨 시험점수 매기듯 할 수 없다 보니 말들이 많은 세계입니다. 게다가 색소폰 연주자들은 서로가 경쟁자이기도 하니 때론 견제되고 욕 먹기도 쉬운 곳이죠.”
천안 쌍용동 열린치과 옆에 ‘뮤즈’를 채린 지도 10년. 수강생들도 많고 각종 무대에도 많이 서는 편이라 부족한 점은 없다. “다만 더욱더 실력을 갈고닦아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습니다. 더욱 정진하고, 일신우일신해서 만인이 인정하는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