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장한 동훈씨가 땅속에서 솟아오른 한 무리의 벌떼를 채로 잡았다. 주변엔 말벌들이 그를 공격하느라 정신없다.
8월26일 아침, 전화가 울렸다.
"말벌 잡으러 갑시다." 뜬금없는 말, 하지만 그가 누군가. 전국의 험한 산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사람. 온갖 희귀약초는 모두 자기것인 양 캐는 사람. 게다가 지금은 말벌잡는 제 철. “아, 그러시죠.”
모든 일정 접고, 카메라만 달랑 챙긴 채 약속장소로 부리나케 나갔다.
말벌 나타나면 무조건 조심해야
밤나무 숲을 잡초제거하던 인부가 말벌에 쏘여 동훈씨를 찾았다. 그가 가는 사이 또한명의 인부가 말벌에 쏘여 고통을 호소했다.
흙을 걷어내자 땅속에 있던 말벌집이 형체를 드러낸다.
안동훈(45·자연산야초 대표)씨가 30분쯤 달려 간 곳은 천안과 가까운 연기 전의면의 어느 산골. 간벌작업하던 인부 하나가 말벌에 쏘이면서 다급히 연락해온 것이다.
그들이 말한 말벌집은 30미터 반경으로 4군데나 되었다. 말벌집의 형태나 세력을 살펴본 동훈씨가 장비를 꺼내들었다. 소방서 장비라는 우비와 헬맷을 착용하자 완벽한 우주복 완성. 유일한 약점인 손에도 장갑과 고무장갑으로 겹겹이 방어했다.
처음 두군데는 예상했던 대로 세력이 약해 20여 마리를 잡자 끝이 났다. 10미터쯤 떨어져 잔뜩 긴장하고 카메라를 움켜쥔 기자로써는 실망감이 컸다. “이게 답니까” 묻자 “기름값도 안나오게 생겼슈” 한다.
세번째 말벌집은 흉악하기로 이름난 꼬마장수말벌이었다. 사람의 기준으로 말벌이 주는 위험순위가 정해져 있었다.
일반 말벌이 있고, 이보다 무서운 황말벌이 있다. 그보다 독성이 강한 것은 꼬마장수말벌이며, 가장 무서운 장수말벌이 있다. 장수말벌은 일반 꿀벌 500마리와 맞먹는 대량의 독을 한방에 주입한다고 알려져 있다. “장수말벌에 쏘이면 한방에 갈(죽을) 수도 있어요. 벌초하다 벌에 쏘여 죽었다면 보통 장수말벌이지요. 조심해야 합니다.”
말벌은 땅속과 땅위에 벌집을 짓는데, 이날 소탕전략은 모두 ‘땅속말벌’이 대상이었다.
말벌집 주위를 뱅뱅 도는 말벌들을 채로 낚아채고 있는 동훈씨.
동훈씨가 말벌집의 형태를 설명해주고 있다. 복층의 구조를 갖고 있는 벌집.
한껏 몸을 움츠리고 동훈씨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의 전략은 먼저 조심스럽게 다가가 벌집 주위로 날라다니는 말벌을 채로 휘둘러 서너마리씩 잡아냈다.
어느 정도 제거되자 커다란 비닐봉지로 땅 속 벌집구멍을 포위해 덮고, 툭툭 치며 위협하자 수많은 말벌들이 땅속으로부터 한꺼번에 솟구쳐 올랐다. 물론 비닐봉지 안의 하늘이었다.
그들의 전력을 잡는데는 겨우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얘네들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생각해봐요. 얼마나 무서울지…. 잘못 건드리면 ‘나 죽었다’ 생각해야 돼요.”
또다른 비닐봉지에 무사히 벌집을 담았다. 벌집은 축구공처럼 둥그런 모양새를 갖췄지만 자세히 보면 삼층집이었다. 층 사이에 작은 기둥이 있었다. 일부 말벌들은 아직 기둥 사이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 벌집은 ‘붕 붕’거리며 말벌 몇 마리가 어른거리는 상황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세번의 벌집을 공략하는 과정을 지켜봐서일까.
바짝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볼까 몇발짝 다가서는 사이, 갑자기 벌소리가 웅장해졌다. 납작 엎드리며 뒷걸음질치는 사이 동훈씨 몸 주위엔 많은 말벌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한 마리가 카메라 앞으로 날아와 질겁하기도 했다.
한참을 고생해서야 말벌집을 소탕할 수 있었던 동훈씨. 마지막 작업을 마치고 옷을 벗자 몸에서 안개가 피어났다. 땀으로 샤워한다는 말이 그를 두고 하는 말.
애벌레들이 꼬물꼬물 말벌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물이 부옇게 흐린 것은 말벌들이 내쏜 독 때문. 섬뜩하다.
천안 쌍용동 가게로 돌아온 그는 벌집정리에 들어갔다.
“두번째 말벌집은 잘못 지어 애벌레가 다 죽고 없어요. 환경이 그렇게 중요하죠. 대체로 말벌이 벌집을 지은 곳은 사람에게도 명당중의 명당이죠. 또한 말벌은 후각이 민감해 농약을 많이 치는 곳에는 살지 않아요.”
세력이 좋았던 말벌집에는 ‘꼬물꼬물’거리는 애벌레가 꽤 많았다. 어느 것은 이미 말벌의 형태를 다 갖춘 것도 있었다.
말벌은 보통 1㎝에서 큰 것은 3㎝로 곤충류중 가장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왕벌은 4㎝에 이른다.
“요즘 추석명절을 앞두고 벌초하다 말벌집을 건드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땐 재빨리 몸을 피해 자세를 낮춰야 합니다. 말벌에 쏘였다면 카드같은 것으로 벌침을 제거하고 비눗물로 상처 부위를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얼음찜질이 가능하면 더 좋구요.”
동훈씨는 “만약 벌침에 쏘인 부위가 심하게 붓거나 어지럽고 호흡곤란이 오면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